스스로가 영감이
되어야 합니다

A   PERSONA   10

주얼리 디자이너·조각가·아넬리스 미켈슨 대표, 아넬리스 미켈슨

Oct 17, 2024

파인 주얼리가 주를 이루던 시절, 아넬리스 미켈슨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은 컨셉추얼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하며 이목을 끌었다. 동시에 조각가로도 활동하며 거침없이 자신의 미적 세계관을 확장하는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발현된 우연과 의외성을 지닌 형태를 창조하는 것을 즐긴다.

아넬리스 미켈슨의 주얼리는 볼드하고 관능적이에요. 어떤 여성상을 상상하며 디자인을 하는지 궁금해요.

실제 생활 속에서 만나는 여성들이요. 제 주변에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존의 관념을 깨려고 노력 하죠. 사회가 창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개인들의 시도가 필요해요. 이런 진취적인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주얼리를 상상하며 만들고 있어요.

본인 이름의 브랜드를 운영한 지 12년이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나요?

에꼴 뒤 루브르 École du Louvre와 파리 쿠튀르 조합 학교(É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를 졸업하고 프레타 포르테(Prêt-à-porter, 기성복) 업계에서 6년간 일을 했어요. 오뜨 쿠튀르(Haute couture, 최상급 맞춤복) 의상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에 환상을 품고 있던 제가 기성복의 대량생산 라인 업무를 맡는 것은 즐겁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6년이라는 시간이 우울하게 느껴졌죠. 그 때 우연히 친구로부터 <보그 프랑스> 화보 촬영에 필요한 주얼리 제작 의뢰를 받게 되었어요. 카린 로이필드 Carine Roitfeld 가 편집장이었던 시절이죠. 당시에는 보석이 균일하게 박힌 파인 주얼리가 시장을 장악하던 때였는데 카린은 대담한 디자인의 컨셉추얼 주얼리를 원했어요. 파괴적이고 볼드한 형태의 디자인이 필요했던 거죠. 그렇게 화보 촬영에 참여하면서 주얼리 디자인에 흥미를 느꼈고 시장에서 가능성도 발견하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스로 주얼리 제작법을 터득한 셈이네요.

맞아요.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든 다음, 이 디자인이 기능적으로 완벽한지 확인하기 위해 공방을 찾아가 전문가와 상의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장인을 찾는 일이 무척 어려웠죠. 파리 방돔 Vendome 광장의 모든 주얼리 공방엔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남성들뿐이에요. 그들 눈에는 공방에 찾아온 26살의 어린 여자애가 우습게 보였을 거예요. 매일 찾아가 그들을 설득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는데, 조금씩 안면을 트는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몰라요. 길고 외로운 여정이었어요.

당시 프랑스는 막 개인사업자 개념이 시작되는 시기였어요. 지금처럼 SNS가 활성화되지도 않아서 작은 브랜드가 성공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는데, 20대에 본인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친구들은 모두 회사에 다니고 있었죠. 혼자 무인도에 놓인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사업적 마인드보다 창조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모든 영감을 담아 열정적으로 완성된 디자인을 바라보니 그 자체가 나로 보이더군요.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고 가장자리에 서명을 하는 것처럼 저 또한 주얼리에 제 이름을 새겨야 할 것 같았어요. 커머셜한 제품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제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거나 두렵지 않았어요. 결과물이 이미 나를 완전히 반영하고 있으니까요.

주얼리 디자인과 조각 작업, 두 가지 일을 왕래하고 있는데 각각의 작업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사이즈만 다를 뿐 저에게 두 작업의 과정은 완전히 동일 해요. 주얼리는 찰흙이나 왁스를 손으로 주무르며 디자인을 완성하고, 조각 작품은 재료를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면서 자르고 붙이는 일을 반복하죠. 미리 디자인을 생각하고 종이에 스케치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바로 손으로 볼륨과 텍스처를 느끼면서 형태를 정해요. 그래야 미리 계획하지 않은 의외의 무언가가 탄생하니까요. 그렇게 나온 형태여야 훨씬 재미있어요. 마치 아이들이 찰흙으로 만드는 추상적 오브제가 동심의 에너지를 담고 있어 신비로워 보이는 것처럼요. 창의적인 디자인이 되려면 단순 트렌드를 넘어 새롭고 달라야만 해요. 그러려면 내 안에서 리서치를 하고, 손으로 여러 시간 동안 만지고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죠. 주얼리를 만들거나 조각 작업을 하거나 가구를 만드는 모든 창작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아티스트라면 본인 스스로가 영감이 되어야 해요. 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로 창조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죠.”

현재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최근 라 푸쉬 La Poush라는 젊은 아티스트·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창작하는 파리의 아틀리에에 입주하면서 조각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돌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탈리아에 있는 작업실로 이동해야 했는데 파리로 옮기면서 더 많은 가능성의 기회가 열리는 느낌이에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있다 보니 새로운 재료를 시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거든요. 그리고 곧 새로운 남성용 주얼리 컬렉션 ‘크래쉬 Crash’ 론칭이 있을 예정이에요. 이전 컬렉션이 서정적인 분위기였다면 이번엔 매우 락앤롤한 스타일로 풀어냈어요. 어떤 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일지 연구하고 있죠.

매장의 인테리어와 가구 전부 스스로 디자인하고 제작까지 맡았다고 들었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의뢰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추구하는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저자신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대변하는 주얼리들이 놓일 매장의 공간 또한 나의 취향을 강력하게 투영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늘 대형 조각 작품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매장 인테리어를 하면서 그 소망을 어느 정도 실현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용과 완성도에 대한 강박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고객들이 매장에 들어서면서 제 미적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모든 디자인에 동일한 감도의 미적 감각을 유지하는 능력은 어디서 오나요?

아티스트라면 본인 스스로가 영감이 되어야 해요. 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로 창조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죠. 레퍼런스를 찾거나 무드 보드를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대신 리서치를 통해 하나의 주제를 최대한 깊숙이 파고들고 그 오랜 진중함의 결과로 진짜 원하는 컬러나 형태를 발견하는 과정이 디자인에 존재해야 해요.

그렇다면 파리라는 도시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전 세계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가장 높은 도시임이 틀림없어요. 파리지앵들은 이 도시 자체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미적 수준에 맞춰 개인 라이프스타일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돼요. 의식하지 못하는 강제적 압박 같은 것이 분명 존재하죠. 재미있는 점은 외국인 친구들 또한 파리를 방문하면 가장 멋있는 옷차림과 애티튜드를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거예요. 파리는 누구에게나 미적 영감을 주는 장소예요.

잠시 파리를 벗어나 보죠. 가장 이상적인 바캉스 장소가 있다면요?

산이요. 산 정상에서 느끼는 정적인 순간은 도시의 정적과 완전히 달라요. 더 깊은 고요 속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관광객이 거의 없는 그리스의 한적한 마을에 찾아가 바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스인들의 얼굴과 제스처를 관찰하는 것 또한 즐거운 습관이에요. 단순하고 서정적이죠. 그곳에는 파리에서 발견할 수 없는 다른 아름다움이 존재해요. 오래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은 수건 한 장, 그 위 작은 화병에 꽂힌 한 송이의 꽃이 전달하는 일상의 잔잔한 아름다움 같은 거요. 이런 휴식의 시간을 거치면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어떤 삶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유로운 삶. 여성으로서 스스로 자유롭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해요. 어릴 적 우리는 그런 자유로움으로 세상을 경험했는데 성장하면서 점점 억압당하고 자유를 뺏긴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성이기 때문에 나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가치관보다는 여성이라서 스스로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해야 해요. 그 후 주변을 돌보는 것이 순서이지 않을까요?

‘일’이라는 영역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각가로서 기술과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어요. 언젠가 공공장소에 제 작품이 놓이는 것을 꿈꿔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정원의 한 공간에 제 작품이 영구적으로 놓이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아드리안 보이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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