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을 달리하면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습니다

A   PERSONA   5

공간 디자이너·WGNB 대표, 백종환

Sep 11, 2024

카카오 플래그십 스토어부터 교보문고, 압구정 준지 쇼룸까지 백종환 소장이 운영하는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WGNB는 다채로운 포트폴리오를 써나가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날 때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 그는 같은 것도 달리 보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일과 삶 속에서 미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보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까지 책임지는 것이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시적인 벽, 천장, 마감 등 인테리어 관점으로만 접근했던 예전과는 달리, 클라이언트의 감각과 지식의 수준이 매우 높아지면서 생긴 변화인 것 같아요. 향이나 음악, 가구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의 공간이 많아졌죠. 고객의 눈높이 역시 높아졌어요. 2013년 즈음부터 고속터미널 꽃시장의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했대요. 그 무렵 챕터원 같은 라이프스타일숍들도 생겨났고요. 취향,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브랜드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시점도 이쯤이죠. 공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는 뚜렷한 증거예요.

높아진 취향의 수준만큼 공간 디자이너의 문화적 소양도 아주 중요해진 것 같아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문화적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 향, 브랜딩, 마케팅 등 다양한 면면에 관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춰야죠. 저는 어려서부터 책, 영화, 음악 등 많은 영역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한쪽에만 깊이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폭넓게 익혔죠. 그 덕분에 조예가 아주 깊은 수준은 아니지만, 공간에 어울리는 조명, 의자 등의 가구, 음악과 그 음악을 잘 표현할 스피커 등을 제안하고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제안들을 모아 일관성과 응집력을 갖춘 공간을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WGNB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직선적이고 기하학적 요소를 곳곳에 활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런 구조적인 공간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예전부터 인테리어보다 건축이나 가구에 대한 관심이 더 컸어요. 건축과 가구, 인테리어는 구조에 있어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불특정한 사람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디자인된 의자의 스케일을 키워 건축의 구조로 이어지는 점을 발견하거나, 건축의 특이한 구조가 작은 공간에서 다른 기능을 해낼 때 흥미를 느껴요. 구조를 복잡하게 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화시키려는 생각 때문에 기하학적 형태를 자주 활용하게 되는 것 같고요. 구조를 파악하고 스케일을 변형하거나 다른 매개체에 적용해 보는 과정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지금 이 공간에 있는 MR20 체어는 캔틸레버 cantilever 구조(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쪽 끝은 자유로운 들보 형태로 설계한 건축물)인데, ‘이 정도 굵기의 받침과 특정 금속을 적용해 일정 높이를 적용했을 때 어마어마한 무게를 버틸 수 있구나’와 같은 구조에 대한 정보들을 스스로 학습한 후 공간 등 다른 디자인에 적용하고 실험해 보는 식이죠.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 제안을 받을 것 같은데, 진행할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주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양성입니다. 항상 동일한 프로세스를 반복해 비슷한 프로젝트만 진행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요. 새로운 면적과 장르의 공간 의뢰가 왔을 때 함께하는 직원들도 더 즐기면서 하게 되죠.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해 봤지만, 가장 하고 싶은 공간은 호텔이에요. 호텔은 휴식, 상업성, 경험 등 모든 복합적 기능을 총체적으로 갖춘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 미용실도 해보고 싶어요. 아쉽게도 아직 한 번도 의뢰가 들어온 적이 없지만요. 제 머리를 보고 연락을 안주시는 걸까요?(웃음)

“성공과 실패는 스스로를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파악하고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최대한 구현하는 삶이 행복한 성공을 이루는 삶이죠.”

공간의 정체성, 추상적 메시지 등 아이디어를 실제 공간으로 구현할 때 유념하는 생각이 있나요?

독일 철학자 칸트가 말한 ‘내용 없는 생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는 문장을 ‘감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감각은 맹목적이다’와 같이 제 방식대로 조금 변형해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라도 어떠한 메시지나 논리가 없으면 그곳은 공허한 곳이 되는 거죠. 평면과 마감재, 동선, 가구 등 모든 요소에 그것을 고른 합당한 논거와 메시지를 담아내야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인간에게 얼마나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가’가 미학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예쁜 것, 보기 좋은 것을 넘어 경외심일 수도, 놀라움일 수도 있죠. 결국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곧 아름다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나요?

영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를 보면 리키라는 인물이 제인에게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비닐봉지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여준다고 하면서요. 아름다움을 달리 바라보는 시각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무심히 움직이는 비닐봉지가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아름다운 것일까. 평범하고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이 아름다운 건 아닐까?”와 같은 관념이 일었죠. 시각을 달리하면 아름다움은 삶 속 도처에 있어요. 이러한 시각을 기르는 힘은 제가 본 것과 같은 영화, 책, 음악 등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자 능력이 다르잖아요. 내가 5의 재능이 있는데, 8을 해내면 성공한 거죠. 반면 10의 재능이 있는데, 같은 8을 하면 실패한 거고요. 남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능력의 최대치를 최대한 구현하는 삶이 행복한 성공을 이루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준 본인만의 관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앞서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저는 기존의 원리나 관념을 해체하고 감각적이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아요.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걸 가장 싫어하고, 계속 변화를 주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죠. 이런 내면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풀어내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연결해 새롭게 바라보는 접화적 사고를 하고 있어요. 이질적인 A와 B를 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C를 창조해 내는 거죠.

본인에게 이상적인 삶이란 어떤 삶인가요?

관계와 성취, 보상이 균형을 이루는 삶입니다. 관계는 가족 간의 사랑, 동료와의 신뢰를 모두 포괄해요. 각 요소는 과할수록 좋은 것 같고요. 그래서 저도 과하게 잘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웃음)

에디터 한동은
포토그래퍼 맹민화


Recommended

A PERSPECTIVE is a digital content platform developed througha partnership between Magazine B and Pole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