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에 필요한 전통을 이어 나갑니다

A   PERSONA   40

화요 대표이사, 조희경

Jun 26, 2025

조희경은 광주요 그룹의 3세대 경영인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군 전통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한국 도자기와 주류 산업에 새로운 시선을 불어 넣는다. 그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삶의 미학이 담긴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며, 한국 땅에서 비롯한 도자기와 술의 아름다움을 동시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심과 감각으로 가업을 잇는 그의 행보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어른의 상을 그리기에 충분하다.  

인터뷰 경험상, 기업의 대표이사들은 오늘처럼 오전에 인터뷰를 잡더군요.

제가 인터뷰를 오전에 잡은 건 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시간대이기 때문이에요. 오후에 주로 회의를 하는데, 회사 업무에 한 번 몰입하면 인터뷰 내내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저 자신을 감추게 되더라고요. 오늘 인터뷰는 회사보다 제 삶의 태도를 묻는 자리인 것 같아서 일부러 오전에 잡았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오후에 인터뷰하는 게 좋아요. 오전엔 얼굴 부기도 덜 빠지고요. (웃음)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일어나서 출근하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좋아해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7시에 출근하니까 매일 아침,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셈이죠. 이 때 주로 명상과 스트레칭을 해요. 머리도 꼭 감고요. (웃음) 40대 중반이어서 그런지 화장보다 머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머릿결이 예전처럼 찰랑거리지 않으니까, 더 신경 쓰게 돼요. 예쁜 옷도 골라야 하고, 커피도 내려야 하고요.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한답니다.

사무실에 물건이 많네요. 특별한 기억이 담긴 물건을 잘 보관하는 편인가요?

몰디브 해안가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에게 선물 받은 하트 모양 돌멩이를 가지고 있어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는데, 그 소년이 그걸 아는지 하트 돌멩이를 선물하더라고요. (웃음) 대단한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문득 그 장면이 떠올라서 돌멩이를 유리병에 담아 두었어요. 그런데요, 저는 돌멩이보다는 그 안에 담긴 기억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좋은 장면이 떠오른다면, 특정 물건과 상관 없이 그 기억 자체가 저에겐 위안이 되는 거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쌓은 전통을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지금은 좋은 도자기와 좋은 술이 자연스레 식탁에 올려지는 시대이잖아요? 그렇다면 쓰임이나 맛보다는 한국 도자기와 한국 술에 무형의(intangible) 가치를 담는 게 더 중요하겠죠.”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의 고문과 증류식 소주 브랜드 화요의 대표이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요?

브랜드가 쌓은 아카이브를 활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시도하는 새로움은 기업이 쌓은 전통을 강화하는 행위에 가까워요. 과거의 것에 새로운 결을 더하는 것. 그것이 브랜드의 전통을 지켜 나가는 방법이자, 브랜드를 동시대에 알리는 방법이에요.

화요에서 10년 만에 새로운 증류식 소주를 선보인다고요? 2024년에 화요의 대표이사로 선임됐으니, 첫 번째 결과물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6월 26일에 공개하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참고로 ‘화요19金’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100% 국내산 쌀을 발효·증류한 후 옹기에서 긴 시간 숙성한 원액에 특별한 풍미의 오크 숙성 원액을 블렌딩한 것이 특징이에요. 토닉워터나 탄산수 등을 타서 희석해 마시는 것이 화요를 즐기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굳혀지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도수를 19도로 낮춘 대신 깊고 섬세한 향미를 담는 데 집중했어요.

19金이란 이름에 숨겨진 의미가 궁금합니다.

일단 19는 술의 도수인 19%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네이밍이고요, 흥청망청 마시는 술이기보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이들의 고급 취향을 이야기하고 싶어 ‘황금’을 뜻하는 한자 ‘금(金)’을 붙였어요. ‘화요19金’을 준비하던 1년여 동안 아버지이자 화요의 창립자인 조태권 의장님을 붙잡고 화요를 설립한 배경에 관해 인터뷰를 나눴는데요, 의장님은 100% 국내산 쌀을 사용해 제대로 된 증류식 소주를 선보이고 싶어 화요를 설립했다고 해요. 화요의 술을 군부대에 납품한 이유도 성인이 되어 마신 첫 번째 술이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화요19金’을 개발할 땐 젊은 세대들이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시듯 원액으로 마실 수 있도록 알맞은 도수와 그들이 성인이 됐음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자 했어요.

오래된 가업을 잇는 3세대 경영인이 가장 먼저 하는 건 브랜드 이미지에 참신성을 더하는 리브랜딩 작업과 글로벌 진출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여러 국적을 지닌 친구들과 서로의 삶을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혜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친구들이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지 전부 다 알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이게 사업적 측면에서도 큰 장점이 돼요. 친구들을 통해서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를 확인했으니까요. 특히 제가 한국인이다 보니 늘 저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 아름다움에 관해 묻거든요. 저는 한국인으로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잖아요. 결국에 저는 친구들을 통해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한국의 전통을 담은 브랜드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광주요와 화요에 담긴 한국다움은 무엇인가요?

도전 정신과 가치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해요. 할아버지이자 광주요의 창립자인 조소수 선생님은 일상에서 장인이 만든 도기를 사용하지 않던 시절인 1963년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를 설립했어요. 한국 도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할아버지는 도자기 장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한국 땅에서 한국 흙으로 만든 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 도자기이지 않겠느냐”라고 설득했고, 그렇게 만든 도자기를 들고 영업을 시작했죠. 조선 왕실에 진상하는 도자기를 굽던 관요의 유서 깊은 전통과 장인정신을 설립 정신으로 내세우고 광주요를 알리는 전시를 개최하는 등 초창기 광주요의 행보를 보면 할아버지는 늘 갤러리스트 관점에서 브랜드를 바라본 것 같아요. 반면 조태권 의장님은 ‘테이블웨어’로서 광주요의 가능성을 봤어요. 사실 1988년 아버지가 광주요를 물려받을 때만 해도 플라스틱 소재와 비트렐 유리 같은 깨지지 않는 그릇이 유행하던 시기라 도자기 그릇을 일상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였죠. 그럼에도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한국의 일상으로 파고들게 만들었죠. 아버지가 화요를 설립한 이유도 같아요. 좋은 도자기에 좋은 음식이 담겨야 하는 것처럼, 좋은 술잔에는 좋은 술이 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대표이사님이 그리는 광주요와 화요는 어떤 모습일까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쌓은 전통을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지금은 좋은 도자기와 좋은 술이 자연스레 식탁에 올려지는 시대이잖아요? 그렇다면 한국 도자기와 한국 술에 무형의(intangible) 가치를 담는 게 더 중요하겠죠.

좀더 실질적인 측면에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중국 출장에서 전통주를 담그는 여성을 우연히 만났어요. 저도 술을 업으로 삼는다고 하니까 자신이 담근 술을 종류별로 맛보라며 내어 주더라고요. 그 마음이 참 예쁘잖아요. 고맙고. 그래서 쉽게 친해졌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가 이케아 Ikea와 크레이트 앤 배럴 Crate & Barrel, 월마트 Walmart에 도자기를 납품하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OEM 도자기 제작공장을 운영하는 대표였어요. 그에게 공장에 대해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어요. “우리 공장은 허난성에 있어요. 그곳 진흙이 정말 좋거든요.” 저는 이 간단명료한 대답이 정말 부러워요. 저도 많은 이들에게 광주요의 도자기 제작공장이 이천에 있는 이유를 담백하게 설명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도자기 제작 공장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으니까요. 이천에 광주요 공장을 세운 이유를 설명하려면 우리나라 역사와 시장, 더 나아가 한국의 식문화까지 설명해야 하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 만큼 도자기 산업이 대중화되지 못했다는 얘기일 거예요. 광주요가 왜 100%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는지, 국내 기술로서 제품을 선보여야 하는지,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먼 훗날에는 이천에 공장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희 산업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요. 만약 제 임기중에 그날이 온다면 제가 그만큼 가업을 잘 이끌어 나갔다는 것이겠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잘 살고 있다고 느끼나요?

잘 모르겠어요. 때론 축복받은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때론 바빠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하고요. 저는 요즘 들어서 효도를 열심히 해요. 부모님과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내고 있죠.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제가 부모님 몸을 부쩍 만지고 있더라고요. 옛날엔 부모님이 저보다 쌩쌩했으니까, 부모님 몸을 만질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머리와 등을 자주 주물러드려요. 한참을 주무르고 있으면 부모님 골격의 생김새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돼요. 그게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인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과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그만 칭얼거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분들이 이룩한 가업을 더 잘 이끌어야겠다 같은 마음가짐도 갖게 되고요.

에디터 서재우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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