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위한 다름을
좇지 않습니다

A   PERSONA   26

공간 디자이너·더퍼스트펭귄 대표, 최재영

Mar 13, 2025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을 이끄는 최재영 대표는 빠르게 소비되는 국내 상업 공간 디자인 신에서 흔들리지 않는 공간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에게 새로움이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닌 지금껏 쌓아온 공간 디자인 언어 속에서 진정성이 담긴 것을 발견하고 조합하는 과정에 있다.

더퍼스트펭귄을 공간 디자인과 브랜딩을 겸해온 스튜디오 1세대로 봅니다.

여느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브랜딩, 마케팅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보니 ‘이 신에서 활동하며 제게 부족한 역량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게 된 것 같아요. 열심히 완성한 공간에 미운 간판이나 화분, 메뉴판, 유니폼 등이 더해지는 게 아쉽기도 했고요. 어설프게나마 함께 진행했던 그래픽 디자인을 좋은 서비스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에 2016년 후반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BX(Brand eXperience, 브랜드경험)팀을 꾸리며 작업을 체계화하게 되었어요. 상업 공간 디자인은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넘어 완결성을 만들어내는 데 지엽적인 노력이 깃들 수밖에 없어요.

일의 외연을 넓히는 것에 대한 당시 클라이언트 반응은 어땠나요?

작업에 대해 클라이언트가 부담 갖지 않을 소정의 비용을 청구했습니다. 이 작업을 대충 고민한 결과물이나 무상의 서비스로 인식하지 않길 바랐어요. 업계나 클라이언트 모두 해당 분야에 대한 인식의 틀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 노력이 더욱 필요했어요. 하나씩 결과물을 쌓아오면서 이제는 더퍼스트펭귄이 브랜딩을 하나의 축으로 다루는 스튜디오로 인식되어 기쁜 마음이죠.

업계에서 브랜딩을 겸하는 스튜디오라는 아이덴티티로 승부를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한 순간이 있었나요?

비즈니스적인 관점으로는 지금도 브랜딩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웃음) 모든 작업이 순차적으로 타임라인에 맞춰 진행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여러 프로젝트가 겹칠 때는 버거울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프로젝트의 완결성을 위해서 브랜딩은 놓을 수 없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모든 공간에 훌륭한 브랜딩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공간과 소프트웨어가 따로 움직이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프로젝트의 일관성을 주요한 측면으로 두고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일의 효율이 낮을 지라도 끝단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저는 그게 대표님이 일을 대하는 태도라고 느낍니다.

이렇게 일을 이끌어온 데 대단한 원동력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소양을 가진 듯해요. 가보지 않은 길을 갔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나 즐거움도 크고요. 이전에 없던 방식, 영역을 개척하고 확장을 시도하는 게 저희 스튜디오의 일관된 방향성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편견을 갖지 않는 게 중요해요. 선례에 메이지 않고 안 가본 길을 과감하게 가보는 거예요. 새로운 공법이나 레이아웃을 도입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늘 녹아 있습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고 그로 인한 비용 부담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러한 태도가 중요해요.

“제게 단 하나의 천재성이 있다면 그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는 힘인 것 같아요. 반복하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보람과 희열을 느낍니다.”

일을 대하는 더퍼스트펭귄만의 또 다른 원칙이 있을까요?

새로움을 위한 다름을 좇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생활 속 의사결정부터 어떠한 성취를 위한 선택까지 맹목적으로 새로운 것을 좇거나 숭배하지 않아요. 대신 저마다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하게 갖고 선택하려 하죠. 한국 상업 공간 디자인 신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어요. 새로운 것이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어떤 가치를 주던 시대가 저물었죠. 그간 단기간에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새로움에 도취해 내놓은 결과물이 많았어요. 저희는 그런 디자인을 지양합니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흐름 안에서 공간 디자인 언어, 조형, 소재, 개념을 쌓고 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대라 봐요.

공간 디자인은 여러 사람의 공력이 모여 완성되는 작업인 만큼 이러한 태도를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죠.

맞습니다. 저희 스튜디오만의 채용 과정이 있는데, 최종 후보자들에게 에세이를 요청해요. 에세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더라고요. 글이 훌륭한가는 중요하지 않고요. 자기 이야기, 생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미숙한 표현력은 경력이 쌓이면서 해결되는 데 반해 레퍼런스 중심으로 사고하고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은 성장하기 힘들거든요. 그런 면에 있어 저희 팀원들은 취향도 성격도 다르지만 자신의 생각을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협업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대표님만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테크니컬한 부분으로는 첫 미팅은 무조건 저희 스튜디오에서 합니다. 저희가 어떤 스튜디오인지 보여드리고 이해를 돕는 것이 협업의 시작이자 클라이언트를 향한 존중이라 생각해요. 클라이언트가 생각하지 않았던 디자인을 제시할 때는 늘 리스크 시나리오를 준비합니다. 새로운 B안을 생각한다는 게 아니에요. 이건 부차적인 제안이라 보거든요. 대신 저희의 제안이 클라이언트가 우려하는 방향이거나 혹은 생각과 달리 작동할 경우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A’안을 준비하죠. 해보지 않았던 것도 흔쾌히 선택할 수 있게 말이에요.

대신 사고의 품이 드는 작업이 되겠군요. 대표님에게 영감은 언제, 어떻게 찾아오나요?

우스갯소리로 ‘입금되어야 일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게도 크게 와닿는 이야기예요. 프로젝트가 없으면 사고하지 않아요. 다만 일이 시작되고 해결해야 할 문제나 제시해야 할 방향성이 생길 때 그것을 늘 머릿속에 품고 다니죠. 그럼 무심코 보는 도시의 여러 환경, 사물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로 연결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어느 프로젝트에서 바닥의 단차를 주고 싶은데 건물주가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 적이 있어요. 콘크리트를 부으면 추후 제거가 쉽지 않으니까요. 예산은 한정된 상황에서 그 고민을 품고 다니다가 길거리에 보도블록 공사하는 것을 봤습니다. 도로경계석이 한쪽에 쌓여 있었어요. 경계석은 화강석, 콘크리트 등이 있는데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터라 엄청 저렴해요. 순간 ‘콘크리트 대신 저걸 쌓아볼까?’ 생각이 들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늘 고민을 품고 다니는 것 자체가 일의 영감, 힌트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작은 공간 작업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공성을 지향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미술관, 도서관 등을 자주 언급하곤 하는 데 사실 1년에 몇 회 방문하지 않잖아요. 저는 매주 찾는 동네 카페, 밥집, 편집숍의 공공성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해요. 개인의 삶의 작은 단위까지 밀접하게 연계된 공간들을 잘 만들고 그것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이런 작은 공간들의 총합이 우리 삶 혹은 사회에 끼치는 공공성이 제게 훨씬 크게 다가오거든요. 저희 스튜디오의 여러 작업 중 2~3년의 짧은 수명이 아닌 10년 이상 제자리를 지키는 공간을 볼 때 성취감을 느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께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일을 목적도 수단도 아닌 과정이라 봅니다. 제게 단 하나의 천재성이 있다면 그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는 힘인 것 같아요. 반복하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보람과 희열을 느낍니다.

에디터 유승현
포토그래퍼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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