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나의 캐릭터가 됩니다

A   PERSONA   29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Apr 3, 2025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은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보다 일하는 태도와 방식에 집중하는 작업자다.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광주비엔날레, 현대자동차, 스투시 등과 작업하며 주목받는 동시대 디자이너인 그는 자신의 분야에 깊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경험을 만날 수 있고, 본질을 파고드는 감각에서 아름다운 작업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작업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요?

계속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요. “이걸 왜 하기로 했지?”, “이 일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이었지?”와 같은 질문이요. 처음 작업의 목적은 단순하고 명확했는데, 어느 순간 곁가지의 생각들이 자꾸 생기거든요. 복잡해지고, 욕심이 붙고, 그러다 보면 본질에서 멀어지기 쉬워요. 원점으로 돌아가려 해요. 쉬운 예로 우리가 운동할 때, 건강해지려고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체중계 숫자에만 집착하거나, 기록에만 목을 매면 몸을 망치기 십상이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본래의 이유보다 파생된 생각들이 커지면, 중심이 흔들려요. 이건 일종의 리마인드이자 자기검열이기도 해요.

이런 검열적인 태도가 디자이너에게 주는 이점을 꼽아본다면요?

욕심을 억제한다고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억제라는 표현을 쓰지만,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며 본질을 생각하는 건 다듬는 과정에 가깝다고 봐요. 작업을 마무리하는 힘 역시 훈련된 억제 감각에서 온다고 여기거든요. 통제가 잘 안되면 작업이 불필요하게 복잡해져요.

디자인 고유의 뉘앙스보다 본질적 맥락을 중요시하는 군요.

늘 제 직업의 기본 전제를 ‘서비스업’이라 생각해요. 저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그래픽 디자인, 전시 기획 등으로 구현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이니까요. 제공하는 콘텐츠가 매번 다른데 균일한 작업을 한다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저만의 스타일, 캐릭터가 강한 작업은 시류를 타버릴 확률이 높다고도 생각해요. 시기마다 관심을 두거나 잘하는 작업도 다르고요. 제 스타일을 구축하고 보여주려 하기보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캐릭터가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분야, 사람들을 경험하며 확장하고 싶을수록 자신의 분야로 깊게 들어가야 해요.”

올해 초 개최한 개인전 <sunkiss>에서도 지난 작업물을 아카이빙하는 대신 그래픽, 타이포그래피 등을 실크스크린, 조형 오브제 등으로 구현한 신작들로 채웠어요.

몇 번의 개인전 기회가 찾아왔는데 고사했어요. ‘디자인이라는 형식을 전시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선뜻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포트폴리오를 전시하고 싶지 않았고, 현대미술 작가들의 문법을 어설프게 따르게 될까도 걱정했죠. 전시가 열린 파운드리 서울로부터 ‘그래픽 디자인이나 북 디자인 대신 전시 공간 자체를 의뢰한다’는 제안을 들으니, 이전에 해왔던 일과 흡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전시를 계기로 제 작업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요. 정리라는 게 일차적으로는 포트폴리오겠지만 이차적으로는 그간 제가 듣고 보고 생각하며 작업했던 것들을 되짚어보며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한 일임에도 펼쳐놓고 보니 스스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그걸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싶었어요.

그게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태이자 전시 콘셉트 ‘구름’이었군요.

이번 전시를 위한 글을 써준 이한범 미술평론가는 제 오랜 공동 작업자 중 한 분이예요.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가졌는데, 하루는 ‘구름은 어떠한 형태는 있지만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하늘의 영역’인 동시에 ‘땅의 논리에 따라 영공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문득 그게 제 작업을 잘 설명할 개념이란 생각이 스쳤죠. 멀리서 볼 때 구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아주 작은 물방울 입자가 무수히 결합한 상태잖아요. 구름 안에서는 입자만 보일 뿐 구름의 형태를 알 수 없죠. 제 작업에 대해서 강하게 규정하지 않으려는 성향과도 닮았어요. 저의 작업 상태를 구름에 빗대어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시를 풀어갈 수 있었어요.

반대로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은 작업은 어떻게 풀어가는 편인가요?

꽤 기술적으로 과정을 접근하는 편이에요. 의뢰받은 조건을 토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하는 데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기본적인 틀이 짜지면 그 틀을 조금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죠. 직업인으로서 구현해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 98%,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부분 2%의 비율로 작업을 이어왔어요. 이 비율 배분에 따라 작업자마다의 작업 성향을 결정지을 수 있으리라 봐요. 비율에 대해서는 저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고요.

그 2%의 감각이 많은 이들이 디자이너님을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요?

의뢰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의뢰자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제안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직업인으로서는 그간 해왔던 일에 조금씩 새로운 것을 더해나가는 게 좋다고 여기고요. 단 1%라도 새로운 면들이 더해질 때, 그것들이 쌓이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노력 중 하나는 작업을 ‘샘플링’이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거예요. 다양한 관심사나 형식을 확장하면서 의뢰 받은 일과 작업 그리고 취미의 경계가 모호해졌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샘플링은 즐겁게 임할 수 있는 제 작업이기도 하지만 기업에서도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기획을 비롯해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지만, 근간에는 언제나 그래픽 디자인이 있죠. 한 우물을 놓지 않고 파온 이유가 있을까요?

한 우물을 팔수록 더 다양한 걸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좋은 작업자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분야가 필요한 데 그게 늘 디자인이었죠.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분야, 사람들을 경험하며 확장하고자 할수록 자신의 분야로 깊게 들어가야 해요.

자신만의 협업 기준이 있다면요?

저는 협업을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일로 접근합니다. 명확한 성과, 엄청난 프로젝트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늘 제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정진하기에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사회 곳곳 자기 역할에 충실한 ‘좋은 사람’ 말이에요.

이렇게 무수히 많은 작업과 현실의 자극 속에서 디자이너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저는 공연장에 가면 무대 위 뮤지션만큼이나 스태프들을 봐요. 무대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일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노고의 현장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고, 그들의 움직임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음식도, 물건도, 전반의 취향도 그런 것 같아요. 화려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최선의 상태를 보여주는 편한 것들이요. 책을 만들 때도 만화책을 자주 생각해요. 만화책은 늘 합리적이고 균일한 형식을 따르지만 콘텐츠가 가장 돋보이죠. 형식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좋은 콘텐츠를 가장 담백한 형식으로 담아내는 것에 관심이 가요. 결국, 어떠한 결과를 위해 취하는 각자의 최선의 상태와 움직임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발견하곤 합니다.

에디터 유승현
포토그래퍼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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