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고유성이 담긴 일은
만족감을 줍니다

A   PERSONA   28

소설가, 장류진

Mar 27, 2025

평범한 직장인과 청년 세대의 고민을 재치 있는 감각으로 써내는 장류진 작가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평가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얘기를 핍진한 문체로 풀어낸다. 2018년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달까지 가자>, <연수> 등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형 서점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동시대 한국문학계의 떠오르는 신진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생각을 쏟아내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에서 일의 만족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IT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인 동시에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시절의 얘기가 궁금합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절에 취업을 준비했어요. 한국 경제도 굉장히 어려웠고, 무엇보다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죠.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할 여력이 없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IT 회사에 입사했고, 취업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죠. 꽤 만족하며 회사에 다녔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사회학을 전공해 대학 내내 글을 써왔고, 그 과정을 좋아했어요. 취업 전 언론 고시를 준비 했는데 그때도 늘 글 쓰는 연습을 했었고요. 일이 익숙해질수록 무언가 뚝 끊긴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바로 글쓰기라는 걸 알아챈 거죠.

한겨례교육문화센터의 소설 쓰기 강좌를 들으며 처음으로 소설을 쓰게 됐다고요?

수업을 들으면 뭔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글쓰기 강좌를 검색했어요. 수필, 시나리오 등 여러 강좌 중에서도 소설 쓰기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당시 한국 젊은 작가들의 단편 소설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거든요. 그렇게 난생처음 소설을 쓰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빵 클래스를 들으면 빵 하나는 집에 가져올 수 있잖아요. 내가 쓴 소설 하나는 가져갈 수 있겠구나 하고 가볍게 시작했던 일이에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 없이 시작한 취미 생활이었던 거네요?

소설가가 될 거란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왠지 쑥스러워서 가족과 친구들에게조차 글 쓰는 걸 말하지 않았고요. 정말 물 흐르듯 지금의 제가 된 거죠. 스스로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수업을 들었고, 1년만 쉬면서 본격적으로 습작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퇴사 후 동국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을 수료했어요. 돌이켜보니, 제대로 배워 쓰고 싶은 마음에는 등단이라는 꿈이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전업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죠.

등단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는 신진 작가 대열에 오른 점이 스스로도 놀라웠을 것 같아요.

대학원 수료 후 곧바로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어요. 출근 3일째 되던 날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했다는 전화를 받았죠. 이후 ‘일의 기쁨과 슬픔’이 창작과비평 웹사이트에 공개됐고, SNS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서버가 다운되는 놀랄만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여러 이벤트 덕분에 갑작스럽게 여러 문예지들로부터1년 치의 원고 청탁을 받게 됐고요. 취미로 시작해 대학원에 가기까지 8년 동안 모아둔 습작 중 마음에 드는 이야기들을 씨앗 삼아 수정하고 발전시켜서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 제 첫 책이자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출간했습니다. 꾸준히 글쓰기에 집중했던 과정이 허투루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나만의 창작물을 낼 수 있는 일이라는 고유성에서 오는 만족감이 큽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셈인데요, 소설가라는 직업은 어떤가요?

삶이 달라졌다기보단 직업이 바뀐거죠. 일의 본질이나 감각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월급이 들어오는 정규직의 안정적인 삶에 강박이 있었어요. 프리랜서가 되면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 삶에 굉장히 만족합니다. IT회사에서 제가 했던 일은 다른 사람이 대체해도 비슷하거나 어떤 때는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소설은 창작의 영역이잖아요. 제가 시간을 들여 글을 쓰면 세상에 없는 저만의 결과물이 나오죠. 나만의 창작물을 낼 수 있는 일이라는 고유성에서 오는 만족감이 큽니다.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현실 밀착형 소설을 써오고 있습니다.

늘 핍진하게 쓰고 싶은 욕구가 커요. 그러기 위해 등장인물의 직업에 관한 취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부터 부탁드리기 머쓱한 먼 인맥을 총 동원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잡플래닛 등에 올라온 회사 리뷰를 읽어본 적도 있어요. <달까지 가자>는 응급실 신에서 피의 색이나 수술 시간 등을 정확하게 쓰고 싶어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의 남궁인 선생님께 감수를 부탁드린 적도 있고 단편 ‘동계 올림픽’은 쇼트트랙 덕후인 예전 직장 선배에게 자문을 구해 트로피 모양을 실제에 맞도록 변경할 수 있었고요.

사회적 불평등이나 청년 세대의 고민같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연수> 수록작 중 ‘펀펀 페스티벌’이나 ‘라이딩 크루’의 경우 요즘 세대가 공정을 다루는 감각을 넣고 싶었습니다. 공정을 외치다 결국 속옷까지 내리고 알몸으로 자전거 시합을 하는 장면 같은 거요. ‘지금의 세상에서 공정이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공정일까, 유명 대학을 나와서 경쟁률 높은 시험을 보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은걸까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을 생각하면 그게 공정한 과정이라 할 수 있나’ 같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다가 기계적으로 공정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유머러스한 여러 상황을 덧붙여 이야기를 완성했고요.

써내고야 마는 의지에 불을 지피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이 일은 반드시 제가 해야 하잖아요. 여전히 심적 부담도 크고 엄청 떨리지만 마감이 저를 쓰도록 만들죠. 매일 무언가를 쓰기 위해 루틴있는 일상을 보냅니다. 트레이닝 복을 갖춰 입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책상 앞에 앉아 배가 고플 때까지 일단 써요. 계속 쓰고 지우더라도 컴퓨터 앞에 집중해서 앉아 있는 거죠. 밥과 밥 사이가 작업 시간인 셈이고요. 좋은 소설, 진짜 훌륭한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진다면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마감을 잘 지키는 소설가가 되자. 그것만 해도 목표 달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담감이 좀 덜해지죠.

누구나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모두 소설가가 되진 않잖아요. 이 둘을 가르는 차이가 있다면요?

고유성을 가졌느냐인 것 같아요.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써내고 있다면 이미 작가라고 생각해요. 문화센터에 다닐 때 선생님이 글을 써야만 하는 ‘종족’이 따로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그 중 한명이었고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나 종족처럼 존재해요. 그 종족은 어떻게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 인생에 한 번은 글을 쓰게 될 테고요. 그 정도로 쓰고자 하는 욕구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느껴요. 그 글을 타인이 많이 읽는 케이스가 있을 테고, 적거나 혼자만 읽는 경우도 있겠지만 단지 그 차이인 거죠.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소설만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술의 원본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이요. 소설 한 권 한 권이 모두 원본인 셈이잖아요. 영상 역시 소설과 같은 서사 예술이지만, 영상은 100명이 모두 똑같은 장면을 보는 거라면 소설은 언어와 문장으로 이뤄져 있어 각자 다른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는 점도 소설만의 색다른 매력이죠.

에디터 이은경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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