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연이 추구하는
청각과 미각의 아름다움

A   PERSONA   4

위스키 칼럼니스트·작가·보연정 대표, 정보연

Sep 2, 2024

클래식

정보연은 어린 시절부터 부러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와 클래식 음악의 엄청난 마니아인 아버지 덕분에 늘 집 안에 클래식이 흘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셨는데, 찾아 오는 언니들한테 늘 치근덕댔어요.(웃음)”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이 일상이었기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음악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클래식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가족들과 음악을 들으며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대화로 나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바흐. “정확함 안에 맑은 영혼이 담겨 있는, 그래서 머리가 깨끗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에요. 평생 한 명의 작곡가만 감상할 수 있다면 바흐를 선택할 거예요.” 이처럼 비트가 없어 편안함을 주는 클래식에 큰 애정을 갖고 있지만 다른 장르도 즐겨 듣는 편으로, 특히 재즈와 힙합을 선호한다. “힙합 뮤지션 중에는 나스 Nas를 좋아해서 아주 크게 틀어놓고 들어요. 뉴진스 음악도 좋아하고요. 음악 감상의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악은 제가 하는 일과도 연결고리를 갖고 확장돼요. 가령,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파우스트>와 같은 특정 작품을 읽을 때, 이를 음악으로 재해석한 구노 Gounod의 오페라 콘텐츠를 함께 듣는 방식이죠.”

정보연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5


안드라스 쉬프 Andras Schiff, 바흐 6 파르티타스 (DECCA, 1985)

쉬프의 바흐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정보연은 경건해지는 마음을 느낀다. 화려한 기교의 연주를 잘 해내는 연주자이지만, 정확한 연주 뒤에 가벼운 호흡이 느껴지고 나아가 덜어냄의 미학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아침을 시작하기에 특히 좋은 음악이라고 추천한다. 하루가 물 흐르듯 잘 진행될 수 있다는 자기암시 같은 곡이라고.


루돌프 제르킨 Rudolf Serkin,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TELARC, 1983)

루돌프 제르킨은 베토벤 음악에 정통한 피아니스트이다. 세이지 오자와와 보스턴 심포니가 함께한 이 곡은 1970년대 후반에 녹음한 연주곡인데, 젊을 때의 패기 넘치는 힘보다는 부족하겠지만, 한음 한음 최선을 다하는 연륜 있는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는 특히 2악장의 피아노 선율이 담담하게 시작될 때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이 음악을 들으면 경험과 시간의 힘을 믿게 된다고 전한다.


미츠코 우치다 Mitsuko Uchida, 모짜르트 피아노 소품집 (DECCA, 2023)

정보연은 모짜르트 특유의 경쾌함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치다가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나서, 모짜르트의 음악 세계가 얼마나 폭넓고 진지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 곡은 모짜르트를 바흐처럼 연주한다는 생각이 드는 곡으로, 연주자의 해석이 돋보인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2017, WARNER CLASSICS)

정보연은 첼로의 소리가 주는 안정감을 좋아한다. 로스트로포비치의 명반 중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소나타에 빠졌고 가을이 되면 이 곡부터 찾아 듣는데, 울적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선에 몸을 맡기게 된다고. 그러던 어느 날, 스트리밍 서비스 알고리즘이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을 자동재생시켰고, 바로 그의 귀에 꽂혔다. 바로크 시대의 경쾌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그려주는 곡으로,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의 힘이 그를 채운다.


정명훈, 피아노 독주집 (ECM, 2014)

ECM 레이블 특유의 공명한 소리가 그의 머리를 맑게 만든다. 이 앨범은 가족들에게 쓴 사랑의 편지와 같아 더 애착이 간다. 손녀 딸 루아에게 바치는 드뷔시의 ‘달빛’, 음악적 뮤즈이자 누나 정경화에게 선사하는 쇼팽의 ‘녹턴 C#단조’,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모짜르트의 ‘작은별 변주곡’까지. 그에게 감사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연주들로 가득하다.


제철음식

위스키 관련 세션을 주로 진행하는 만큼 정보연은 맛과 향에 민감한 편이다. “친가와 외가의 본가가 각각 전라도와 이북이라 양가 모두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늘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해주셨죠.”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미식에 눈을 떴고, 대학 시절 호기심이 더해지며 한층 다양한 식재료와 외식 문화를 즐겼다. 여러 식품관을 찾아 다니며 쇼핑을 즐겼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식재료를 접해 왔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갖는 건 다양한 제철 식재료다. “농업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농작물 대부분을 1년 내내 맛볼 수 있지만, 그래도 제철에 나는 것만의 풍성한 향과 식감이 존재하더라고요. 요즘 같이 더울 때는 감자와 양파가 시즌이고, 가지도 아주 잘 자라요. 해산물도 좋아하는 편인데, 시기에 맞춰 식재료를 공수해서 먹곤 하죠.” 음악과 마찬가지로 미식의 영역도 그가 하는 일과 아주 밀접하다. 아직 와인만큼은 아니지만 위스키 역시 푸드 페어링이 더 성장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겐 이를 더 잘 소개하고 경험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얼마 전 오뚜기 카레와 위스키의 페어링 세션&워크숍을 직접 진행한 바 있는데, 이러한 이벤트는 그의 비전을 실현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과정이다.

“미식의 세계를 종합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위스키 뿐 아니라 인문학과 미식의 연결을 계속 시도할 생각입니다.”

정보연이 추천하는 제철음식 5


1

여름의 호박 꽃 튀김

이번 여름, 정보연은 농부 시장 마르쉐에서 호박 꽃을 발견하고는 덥석 구매했다. 노란 꽃을 가볍게 씻고, 속을 리코타 치즈로 채운다. 튀김 옷을 아주 가볍게 입혀 튀겨주면 여름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맑은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는 메뉴다.


2

한국의 스파이스 제피

올 여름 향신료 선생님이 알려준 한국의 스파이스 ‘제피’의 매력에 빠졌다. 여름의 어린 제피에서는 라임 제스트의 신선한 맛이 느껴진다고.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에, 제피 세 알, 잣 두 알, 그리고 신선한 올리브 오일을 둘러 맛을 보면, 그저 조립만 했을 뿐인데 스스로 요리사가 된 기분을 느낀다.


3

제철 생선구이

정보연은 제철 생선을 시장에서 구매해 특별한 조리 없이 팬에 굽는다. 1월에는 도미, 5월에는 참가자미, 9월부터는 고등어, 10월에는 삼치가 맛있다. 생선에 따라, 소금, 와사비 간장, 버터소스를 준비하기도 한다. 여기에 따뜻한 밥만 있으면 그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4

늦가을의 굴솥밥

햇쌀을 깨끗이 씻고, 무쇠 냄비에 담는다. 달콤한 가을 무를 채 썰고, 쌀 위에 올린다. 봉지 굴을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를 털어낸 뒤 냄비에 담고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을 뜸들이고 나서, 쪽파를 가득 올린다. 굴 솥밥에는 스모키한 위스키를 반주로 곁들이는 편이다.


5

제대로 만나는 제철 한식, 온지음

정보연이 추천하는 온지음은 식탁과 창으로 계절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봄에는 방풍나물로 만든 죽과 두릅이, 겨울에는 잘 익은 동치미에 꿩 육수를 섞은 냉면과 고소한 잣즙에 수란과 해삼, 문어 등 해산물을 곁들인 수란채가 나온다. 한국의 다채로운 식재료와 조리법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정보연에겐 사계절의 변화를 기다리며 예약하고 싶은 곳이다. 온지음의 와인 페어링도 함께 추천한다.


에디터 장윤성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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