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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노 프로젝트 오너 셰프, 진우범

Sep 11, 2025

멕시칸 퀴진 전문 F&B 기업인 ‘몰리노 프로젝트’를 이끄는 진우범 오너 셰프는 엘 몰리노, 라 까예, 에스콘디도, 페스카데리아까지 각기 다른 콘셉트를 가진 네 곳의 미식 공간을 운영한다. 그는 멕시칸 퀴진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변주해왔지만, 스스로를 “멕시코 음식을 하는 사람”이란 한 마디로 담백하게 소개한다. 진우범에게 요리란 단순한 조리 행위를 넘어, 문화를 해석하고 시대와 장소를 다층적으로 연결하는 일에 가깝다. 그는 멕시코 요리에 담긴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한국이라는 지역성과 현재라는 시간을 교차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펄쳐나간다.

몰리노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이름은 ‘옥수수 또르띠야’를 만드는 제분소(방앗간)을 의미하는 단어인 몰리노 Molino에서 따왔어요. 전통 방법으로 멕시코의 주식인 둥근 빵 토르티야 Tortilla를 만드는 공장을 세우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죠. 토르티야는 멕시코 음식의 기본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국 타케리아 Taqueria(타코 가게)에 납품하는 유통 구조를 구축하는 상상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옥수수가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또르띠야의 중요성이 요리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아요. 많은 국내 타케리아가 여전히 밀가루로 만든 시판 또르띠야를 사용하는 것 또한 현실이고요. 원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선 사람들이 좋아할 멕시코 음식을 선보이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성수동에 오픈한 매장이 ‘엘 몰리노’였어요. 스트릿 타코나 향신료와 가공식품에 버무려진 음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멕시코 전통 식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걸로 알고 있어요. 타코를 만드는 셰프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농담 삼아 “타케리아를 열겠다”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웃음) 타코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물론 건축도 좋아했지만,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군대를 전역하고 플랫폼 스타트업에서 일을 잠깐 하면서 만난,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오너들에게 자극을 받았어요. 저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요. 결국 타코를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스페인어를 배우고 맥시코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죠. 제가 하려는 음식에 대해선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반드시 현지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멕시코에서는 미셰린 스타를 받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푸욜’에서 일했죠. 그곳에선 어떤 경험을 했나요?

처음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멕시코 음식의 정점인 몰레 Mole는 한국의 김치나 장과 같은 소스인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멕시코 퀴진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요. 물론 지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재료가 됐지만요. 저는 정제된 맛과 향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몰레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맛이 굉장히 복잡했거든요. 매 순간 부서지고 깨지는 경험의 연속이었어요. 멕시코 음식에 대한 제 인식도 달라졌어요. 흔히 강렬하고 자극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본질은 아니었던 거예요.

의외네요. 흔히 멕시칸 퀴진이라면 강렬하고 복잡한 향신료의 향미가 떠오르는데요.

특히 다양한 고추 품종들 때문에 종종 혼동이 생깁니다. 멕시코 퀴진은 풍부한 지방과 산, 소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숙성과 발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몰레를 제외하면 오히려 정제된 맛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원물 그대로의 맛이 확연히 드러나고, 원재료가 지닌 감칠맛이 지배적이죠. 예를 들어 옥수수 반죽은 밀가루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를 지니고 있어요. 또 고기의 여러 부위를 한데 모아 기름에 끓이고 졸이는 요리법도 있는데, 이렇게 모인 기름은 육향 가득한 향미유가 됩니다. 지저분하고 투박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요리사의 시각에서 볼 땐 분명 의미있는 행위에요. 현지에서 배우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좋은 음식을 전달하려면, 본질을 파악하고 왜 이 음식을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설령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요.”

서울에서만 벌써 네 곳의 업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러한 시도는 멕시코 음식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의지의 결과물으로 봐도 될까요?

정확해요. 멕시코 음식을 하나의 스타일로만 정의할 수 없기에 다양한 공간이 필요했어요. 서로 다른 네 곳의 트랙에서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는 거죠. 프로젝트라고 하는 단어에 ‘여러 면면을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어요. 엘 몰리노를 오픈하기 훨씬 전, 6년 전쯤 혼자서 미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아키텍처 brand architecture를 짜두었는데요. 최근에 이것을 다시 들춰보니 막연하게 그렸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어서 신기합니다. 여전히 멕시칸 퀴진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아요.

다양한 업장을 이끌어야 하기에 겪는 어려움은 없나요? 

에스콘디도에선 진지하고 무거운 철학을 담아내는 데 집중하는 반면, 다른 업장들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통을 비트는 식의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런 차이 때문에 혹시 손님들이 제가 생각하는 멕시칸 퀴진에 모순이 있다고 느낄까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홀에 직접 나가 손님들과 눈을 맞추고 디시에 담긴 의도를 일일이 설명해요. 미처 전하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고민을 담은 콘텐츠를 공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시리즈 ‘타코집 사람들’을 통해 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니까요.

궁극적으로 어떤 진심을 전하고 싶은 건지 궁금합니다.

식문화와 전통은 유기적이예요. 멕시코 퀴진은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섞이면서 거듭 발전해왔어요. 저는 전통 요리에 담긴 이야기와 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 한국의 지역성과 사계절의 특성을 더해내고 싶어요. 이는 단순한 ‘퓨전’이 아니라 멕시코 음식 자체를 확장하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곡해하지 않는 선을 지키며, 식재료를 고르고 현지의 요리법을 계승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요리에는 버터를 넣으면 맛이 좋아질 걸 알면서도 멕시코에서는 버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넣지 않죠. 이를 위해 음식과 식재료의 원류를 충실히 탐구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정확히 연구하려고 합니다. 동시대 멕시코 셰프들과도 꾸준히 교류하고요.

일할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요?

맛에 대한 개인적 기호를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제게 요리란 즐거움을 추구하는 개인 창작물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계승에 가깝거든요. 좋은 음식을 전달하려면, 본질을 파악하고 왜 이 음식을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해요. 설령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요. 의미 없는 창작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건축을 전공한 배경 때문일 겁니다. 화려한 장식이 많은 건축물보다 문화나 역사,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나 렘 콜하스 Rem Koolhaas의 작업을 좋아했죠. 음식도 똑같아요. 그래서 식재료와 레시피에 예의를 지키죠. 냉동 생지나 시판 옥수수 가루는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작은 재료 하나도 직접 만들어 사용해요. 누군가에겐 사소하고 의미 없는 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맛의 차이가 분명하거든요. 이는 ‘속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다’라는 또다른 원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에스콘디도가 미쉐린 스타를 받은 뒤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더 큰 사명감을 심어준 것 같아요. 무게를 알기에 더욱 겸손해지는 것 같고요. 저는 특출난 미식가나 대단한 요리사는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추구하는 향과 맛,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의 미식문화의 흐름과 어느정도 맞닿아(align)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 미식 신이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퀴진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에스닉 푸드 Ethnic food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분위기도 훨씬 자유로워졌죠. 그래서 순수하게 식재료와 음식 본연의 향미, 다양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 잘 쉬는 편인가요?

사실 못 쉬어요. 그래도 쉬는 날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새로운 곳을 부지런히 다녀요. 기대를 갖고 찾아간 곳에서 그에 걸맞은 음식이 나오고, 공간과 음식이 조화를 이루며 음료까지 완벽히 어울릴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어요.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맛보는 행복이죠. 저도 그런 음식을 하고 싶어요. 제가 승부욕이 좀 세요. 이기고 싶다기보다는, 이루고 싶은 열망에 가깝죠. 언젠가 멕시코에 레스토랑을 열고 싶고, 국내 F&B 신에 토르티야를 납품하겠다는 비전도 여전히 유효해요. 저와 제 팀만이 할 수 있고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의 최대치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최선우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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