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연이 손끝으로 읽어낸
식물과 그림

A   PERSONA   58

플로리스트·보타라보 대표, 정희연

Dec 11, 2025

정희연의 꽃에는 서양의 볼륨감과 동양의 여백, 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누군가는 그가 일본의 전통 꽃꽂이 이케바나를 배웠을 거라 짐작하지만 그런 경험은 전혀 없다. 대학 시절 동양화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플로리스트로 커리어를 쌓으며 손끝으로 익힌 감각이 자연스레 꽃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정희연은 이제 다시 붓을 잡을 일은 없겠지만, 꽃 그림을 보는 일은 여전히 가장 큰 즐거움이라 말한다. 식물 도감과 미술서적 속 회화들은 정희연의 손끝에 축적된 감각을 작업으로 확장시키며 다음 꽃을 피워내는 에너지가 된다.

정희연의 식물 세계를 확장해준 책 3


<The Secret Language of Flowers>

프랑스 기반의 조각가 장 미셸 오토니엘 Jean-Michel Othoniel이 루브르 박물관과 협업해 집필한 책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명화 속 ‘꽃’을 조명한다. 정희연은 이 책을 통해 1400년경 그려진 <마음의 헌신(L'offrande du coeur)> 속 하트 모양이 금낭화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작품에서 꽃만 확대해 보여주는 이미지와 품종에 집중한 글 덕분에 그림 속 작은 장식처럼 보이던 꽃이 비로소 주인공으로 다가온다.


<The Story of Trees: And How They Changed the Way We Live>

나무가 인류의 생활방식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탐구하는 책으로, 건축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티보 에렘 Thibaud Hérem이 삽화를 맡았다. 정희연은 티보 에렘의 작업, 특히 나무 일러스트의 오랜 팬으로, 이 책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고 말한다. 2022년에는 한남동 알부스 갤러리에서 열린 티보 에렘의 개인전 <꿈의 화원>을 직접 찾아가 책에 친필 사인을 받기도 했다.


<(Nothing but)Flowers>

뉴욕에 자리한 갤러리 카르마 Karma가 2020년에 연 전시 <(Nothing but) Flowers>의 도록으로, 60여 명의 아티스트가 그린 꽃 그림을 한데 모았다. 정희연은 전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뒤늦게라도 책을 구한 것을 ‘잘한 일’로 꼽는다. 같은 품종의 꽃이라도 아티스트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에서는 정희연이 좋아하는 흐트러진 튤립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에디터 정신오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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