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취향은
더 좋은 삶을 만듭니다

A   PERSONA   23

더파크 디렉터·작가, 정우성

Jan 23, 2025

정우성은 20년의 커리어를 자발적 마감 노동자로 살았다. 신문과 잡지, 단행본 등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다듬고 써왔으며, 2020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 더파크에서는 취향을 필두로 한 일상 속 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그는 쏟아지는 정보와, 뉴스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신문 기자로 시작해 남성지 에디터, 작가, 미디어 스타트업 대표 겸 디렉터까지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몸소 보여주는 커리어를 밟아왔습니다.

당시에는 본능적으로 움직였지만, 지난 커리어를 되돌아보니 제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려고 엄청나게 애써왔다는 걸 느껴요. 물론 현장이 주는 가르침이 크지만 뉴스만을 쫓아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남성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브랜드와 물건을 소개할 수 있어 좋았지만, 오디언스에게 어떻게든 제 콘텐츠로 도달하지 않으면 영원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서서 창업했죠. 확신은 없었어요. 오히려 더파크를 만들고 저만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만들면서 제 색깔이나 장점을 찾았죠.

더파크를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라 소개합니다. 콘텐츠 곳곳 잡지적인 맥락이 녹아있고요. 수많은 미디어 속 잡지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에디터로 일할 때부터 진즉 알고 있었지만 더파크를 운영하며 제가 잡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습니다. 잡지가 왜 이런 형태를 가져야만 하는지, 치열한 미디어 경쟁 속에서도 누군가 왜 여전히 잡지를 만드는지, 그리고 잡지가 왜 필요한 줄도 알게 되는 듯합니다. 결국 미디어는 뉴스와 오피니언으로 나뉘잖아요. 속도 경쟁을 통해 뉴스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퀄리티 컨트롤이 어려워요. 독자의 눈에 불필요한 정보도 다수죠. 저의 경우, 이렇게 많은 정보를 소비하기보다 좋은 글 한 편을 그저 읽고 싶습니다. 국내외 자료, 뉴스를 아울러 ‘지금은 이런 상황이야’라고 멋지게 정리해 줄 수 있는, 원고지 30매 분량의 칼럼 말이에요. 다양한 상황을 취재하고 숙고해 정제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잡지의 속도예요. 더파크에서 잡지적인 결이 느껴졌다면 그건 제가 그런 걸 만들고 싶기 때문이겠죠. 더파크를 시작한 지 5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잡지 칼럼을 영상에 옮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요?

저는 유튜브를 매우 인문학적인 플랫폼이라 생각해요. 누구나 입점할 수 있는 자유 시장인 동시에, 손님으로 누구를 초대할 지도 내가 결정할 수 있죠.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면 그들을 홀릴 패션 콘텐츠를 만들면 돼요. 자동차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저는 어떤 유튜버가 되고 싶진 않아요. IT 유튜버, 자가계발 유튜버, 자동차 전문 유튜버처럼요. 하나의 물건, 장르에 골몰하기보다 좋은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깊거든요. 소위 굿 라이프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요.

‘좋다’는 건 참 중의적인 단어죠.

굿 라이프를 ‘럭셔리’라는 말에서 힌트를 찾아요. 제가 경향신문에 격주간 칼럼을 연재하는데 꼭지명을 지을 때 되게 고민했거든요. 결국 ‘일상과 호사’라는 제목을 지었는데 럭셔리를 한국어로 바꾸면 뭐가 제일 가까울지 고민하다가 찾은 단어가 호사예요. 럭셔리라는 말처럼 크게 오해받는 단어도 없을 거예요. 사치품, 고급품, 명품 등으로 생각하지만 럭셔리 비즈니스 업계 변두리에서 15년 이상 취재해 온 저로서는 물건으로만 채울 수 없는 단어예요. 독자 한 분이 “호사라고 하니 풍류가 느껴진다”고 달아주신 댓글이 기억나요. 럭셔리는 말 그대로 정말 라이프스타일인 거죠. 일전에 로로피아나 대표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지난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으니 “친구네 섬에 가서 놀다 왔다”고 하더군요. 섬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물으니 “늦은 아침 일어나 간단히 식사하고 바닷가에서 놀다가 점심 먹고 영화 한 편 보다가 낮잠 자고, 저녁을 먹다가 와인 마시고 책 읽다가 잠드는 일”을 반복했다고 하더군요. 제 여름휴가와 똑같았어요. 그 사이에는 클래스가 없는 거죠. 양양, 인천, 한국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아는 게 럭셔리라고도 느껴져요.

“원고를 쓰거나 물건을 소개하거나, 영상을 만드는 것 모두 결국은 정확해지려고 하는 일 같아요. 정확한 문장을 쓰고 싶어서요.”

더파크 콘텐츠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굿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어요.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처럼 미디어는 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초기 주 1회 업로드를 목표로 했다가 2회까지 늘렸는데 그러기 위해서 고정적인 주제가 필요했죠. 특히 리뷰하는 미디어라면 신제품이 나오는 비즈니스 필드를 하나 붙잡고 있어야 끊임없이 새로운 소식도 전할 수 있고 구독자를 모으기 상대적으로 쉽죠. <GQ>에서 자동차 기사를 계속해 써온 데다가 현대사회에서 의식주 못지않게 자동차가 중요한 역할을 가지니까요.

미디어의 흐름과 함께 자동차 콘텐츠도 꽤 빠르게 진화했어요.

맞아요. 신기하게도 자동차는 그 어떤 산업보다 빠르게 콘텐츠 시장이 유튜브로 넘어왔어요. 글보다 영상에서 자동차의 역동성을 느끼기 좋으니까요. 덕분에 콘텐츠, 마케팅 방향도 크게 달라졌죠. 볼보만 하더라도 이제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마케팅을 진행해요. 개인적으로는 시승하며 디자인이나 승차감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칼럼에 가까운 자동차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어요. 자동차 앞이 아닌 사무실에 앉아 차분히 자동차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좀 더 만들고 싶어요.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며 취향에 관련된 많은 콘텐츠를 다루고 있죠. 취향이 갖는 힘은 무엇인가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지난 1년간 나를 즐겁게 한 것이 무엇인가? 되돌아보면 찾기가 쉽지 않아요. 취향은 이러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도와주죠. 취향이라는 말의 범위가 너무 넓긴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굿 라이프를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예요. 자동차 콘텐츠를 만들면서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콘텐츠를 바라보니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잘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투신하고 싶은지를 아는 것은 직업과 관계없이 더 잘 살고 싶은 사람에게 엄청난 행운이라 봐요. 세월호 사고 당시 엄기호 사회학자와 나눈 인터뷰가 생각나요. 그분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사는 삶’을 좋은 삶이라 답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고요. 사무실 옆 제가 좋아하는 분식집이 있는데요. 가게 앞 화단이 참 예쁜데 그곳 사장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밖에 나와 정성껏 화분을 가꾸셔요. 저는 그게 취향이라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죠.

좋은 취향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 취향을 가지려면 많이 경험해 봐야 하고 많이 사봐야 한다고들 말해요. 근데 20, 30대에게 그렇게 풍족한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럴수록 공부해야 하죠. 박상미 작가님의 <취향>이라는 책을 요즘 읽고 있는데, “좋아하지만 잘 몰라요”라는 말은 되게 유아기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는 문장이 나와요. 좋아하는 건 공부해야 하고 알게 되면 더 좋아지거든요. 공부하며 하나하나 공들여 사고 경험하다 보면 깨달음의 순간이 와요. “내가 좋아했던 밴드는 모두 영국 밴드네. 내가 산 구두들은 모두 영국 브랜드잖아” 처럼요. 나중에 모아보니 그랬던 거죠.

취향은 잡지 에디터의 일과도 맞닿아 있죠. 좋아하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는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정확함인 듯해요. 만드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 결국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원고를 쓰거나 물건을 소개하거나, 영상을 만드는 것 모두 결국은 정확해지려고 하는 일 같아요. 정확한 문장을 쓰고 싶어서요.

디렉터님께 일은 목적인가요? 수단인가요?

삶인 것 같아요. 숨 쉬듯 만들고 씁니다. 저를 위한 지옥이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그건 무언가를 많이 경험하게 해주고 쓰지도, 영상을 찍지도 못하게 하는 곳일 거예요. (웃음)

에디터 유승현
포토그래퍼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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