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리듬이 속도를
완성합니다

A   PERSONA   37

카레이서, 강병휘

Jun 5, 2025

강병휘는 20년 가까이 스티어링 휠을 잡아온 베테랑 레이서다. 스스로를 '노익장'이라 웃어 넘기지만, 여전히 달리고 싶은 무대가 넘치고, 언젠가 극악의 레이스라 불리는 호주 배서스트 6시의 지옥 같은 트랙 위에 자신을 던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질주는 단순히 속력을 높이는 것이 아닌, 감정과 기계의 미세한 균형을 읽고 리듬을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레이서이자 콘텐츠 제작자,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몰입과 균형 사이에서 진심을 기울일 수 있는 일만으로 시간을 채우며, 삶이라는 트랙 위를 달리고 있다.

자동차 레이스는 속도를 겨루는 경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이밍과 기술, 그리고 직감이 중요한 경기라고 하죠. 경기에 임할 때 어떤 걸 주요하게 살피나요?

저는 치밀하게 전략을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라이브 무대에 오르듯 현장의 공기와 흐름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에 가깝죠. 경기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과 패턴을 살피고, 무엇보다 그들의 감정선을 읽으려 해요. 달리는 차의 흔들림이나 미세한 움직임에서 선수들의 감정이 묻어 나오거든요. 그런 순간을 포착해 추월할 타이밍을 잡아내죠.

2000년대 초반부터 트랙 위를 달려온 베테랑 레이서로서 유독 기억에 남는 서킷이 있나요?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라면 단연 뉘르부르크링 24시(Nürburgring 24 Hours)입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약 25km 길이의 서킷인데요, 마치 롤러코스터 레일 위에 아스팔트를 얹어놓은 듯한 느낌이에요. 대부분의 레이스 트랙이 매끈하게 포장됐지만, 이곳은 도로 중앙이 불쑥 솟아 있거나 도랑처럼 파인 구간도 많아 굴곡이 매우 심하죠. 이런 코스를 평균 시속 200km로 달리면 네 바퀴가 동시에 지면에 닿는 순간이 거의 없어요. 바퀴를 억지로 땅에 붙이려는 순간엔 차체가 비틀리면서 ‘이러다 정말 부서지는 건 아닐까’ 싶은 공포가 올라오죠. 하지만 동시에 '이 기계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다'는 쾌감도 찾아옵니다. 오직 레이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죠.

최근에는 포뮬러 E처럼 전기차 레이싱이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분위기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단순한 트렌드라기보다는 시대적인 요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파워트레인 자체가 전환되는 과도기잖아요. 기술은 매해 새롭게 등장하고, 모터스포츠는 그 기술을 가장 극단적인 조건에서 실험하고 검증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전기차는 아무리 경량화해도 기존 엔진차보다 두 배 가까이 무거워요. 무게 중심, 관성, 제동 감각, 그 모든 것이 기존의 주행 방식만으론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드라이빙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기차가 품은 가능성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양산차로 이어지는 과정을 상상하면 꽤 흥미롭죠.

“지금 양손에 가득 쥐고 있는 것이 정말 내 실력으로 정직하게 이뤄낸 결과물이라면, 잠시 내려놓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집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우면 언젠가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잖아요.”

레이서이자 트레이너, 유튜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의 일상을 속도로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일까요?

시속 290km쯤 되는 것 같네요. 빠르게 느껴지겠지만 저에겐 조금 애매한 속도예요.(웃음) 음악을 넘겨가며 듣기엔 바쁘고, 그렇다고 슈퍼카처럼 매섭게 치고 나가는 것도 아닌, 올릴지 줄일지 고민이 필요한 속도죠. 언젠가는 이 속도를 시속 350km까지 올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빈 시간을 보면 '이 시간을 또 어떻게 채울까'를 생각하곤 합니다.

자동차를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은 어디서 오나요?

자동차와 관련한 모든 프로젝트를 일이 아닌 '놀이'로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제게 자동차는 그 자체로 늘 즐거운 대상이었고, 그 즐거움을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쉬워서 트레이너로 활동하게 된 거죠. 콘텐츠 제작도 마찬가지예요. 어릴 때부터 영국 BBC의 자동차 예능 <탑기어 Top Gear>를 보며 자랐고, 언젠가는 한국에서 자동차 예능을 만들어 OTT 플랫폼에 올리고 싶다는 꿈을 품었어요. 유튜브 채널 '스테이션.B Station.B'는 그 비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단편 영화까지 제작하는, 자동차를 소재로 한 종합 콘텐츠 프로덕션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예요.

영화에서 자동차는 인물의 감정이나 캐릭터, 상황을 드러내는 장치로 종종 쓰이죠.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 영화 속 장면이 있었나요?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요. 주인공이 은행을 털고 도주하기 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있어요. 이어지는 다이내믹한 주행 장면들을 보면 확신이 들죠. '아, 저 친구 지금 상태가 제대로 올라왔구나.' 레이싱도 역시 때때로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필요해요. 말 그대로 101%의 퍼포먼스를 끌어내야 하는 순간이 있죠. 그런데 너무 계산적으로 접근하면 한계의 벽 앞에서 멈추게 되거든요. 그래서 차에 타기 전엔 꼭 스트레칭하면서 약간의 긴장을 주고, 심박수를 끌어올려 몸과 마음을 각성 상태로 만들려고 해요. 그 영역에 도달하면, 마치 자동차라는 거대한 기계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된 것만 같죠. 저는 그걸 '띵동이 왔다'고 합니다.(웃음)

때때로 더 빠르게 달리기보다는 잠시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바꿔야 하는 때가 있기 마련인데요. 그 시간을 통과하게 만든 태도나 마음가짐은 무엇이었는지요?

이 일을 하는 게 정말 행복할지 계속해서 물어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과감히 내려놔요. 실제로 레이서로 완전히 전향하기 전, 자동차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쌓은 커리어를 포기하기도 했어요.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승진도 빨라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이 일을 계속해도 행복할지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지금 양손에 가득 쥐고 있는 것이 정말 내 실력으로 정직하게 이뤄낸 결과물이라면, 잠시 내려놓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집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우면 언젠가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잖아요. 그래서 한 번 믿어보기로 했죠.

요즘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이나 질문은 무엇인가요?

지금 출전하는 레이싱 시리즈에서는 아마도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일 겁니다. 더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기량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시점인 것은 인정해야 해요. 후배들도 빠르게 올라오고 있으니 멋지게 내려와야 할 시기를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멈추려는 건 아니에요. 아직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분명히 남아 있거든요. 동시에 일만 바라보던 삶에서 조금씩 시선을 넓혀가는 중이에요. 여전히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이제는 그 속도를 '내 삶 전체'와 조율하는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일상에서 '이 감각은 꼭 달릴 때와 닮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요?

너무 밀어붙이기보다 적당한 여백을 줄 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네 페이스대로 가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때, 훨씬 덜 부담스럽고 더 즐거워져요. 삶도 마찬가지죠. 긴장을 살짝 풀고 리듬을 찾으면, 그 자체로 유연한 속도가 생기니까요.

에디터 정신오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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