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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4, 2025
12년 전 가로수길의 지하 매장에서 시작한 리빙 편집숍 챕터원은 등장부터 주목을 받았다. 물성과 형태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이전에 없던 스타일을 선보였고, 대중과 공예 사이의 높은 문턱을 낮추며 국내 리빙 신에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냈다. 그 뒤에는 김가언 대표의 끝없는 도전과 성실이 숨어있다. 참신한 방향성, 감도 높은 비주얼처럼 큰 테제를 고민하던 그는 이제 일상 곳곳에 숨은 개개인의 작은 취향을 발굴하는데 여념이 없다.
한국 리빙 시장에서 챕터원의 승부수는 무엇인가요?
높아진 소비자의 취향과 태도에 발맞추기 위해 일상을 기민하게 관찰하고자 합니다. 이전까지 취향을 트렌드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연구했다면, 이제는 아주 개인적인 영역으로 규정하고 주위를 살피죠. 되돌아보면 국내 시장에 감도 높고 멋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눌려 있던 것 같기도 해요. 이걸 조금 걷어내고 개인의 일상에서 도출되는 키워드를 깊이 있게 봐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삶에 맞닿아 있는 ‘진짜 취향’을 찾기 위해서요.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천천히 기다리다가 끝내 빠르게 쏟아내는 사람일 듯해요. 상대는 느닷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웃음) 챕터원 식구들, 작가님들과 회의 할 때면 일단 경청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부분이 잘못된 개념으로 이해되거나 피드백이 제대로 오지 않을 때 가감 없이 제 생각을 말하죠. 그래야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업무가 줄거든요. 한정된 인원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지점이라 봐요.
리더로서 의사결정할 때는 직관과 논리 중 어떤 면을 더 활용하나요?
직관이요. 이후에 논리를 쌓는 편이죠. 제가 하는 일은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물론 수익을 생각하지만 결국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니까요. 물론 직감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를 쌓아야 설득력이 생길테죠.
“타인을 따르기 보다 정말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매개체를 제안하고 싶어요.”
챕터원이 한국에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공식화된 틀을 깨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타인을 따르기 보다 정말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매개체를 제안하고 싶죠. ‘하루 중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어디인가?’를 고민하는 순간, 그 자체를 선물하고 싶은 거예요. 집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과 중요한 공간이 모두 다르거든요. 값비싼 브랜드나 유명한 작품보다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확실히 이해하고 새롭게 시도하는 것들이 값지다고 생각해요. 챕터원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긴 사람에게 손가락에 딱 맞는 젓가락을 제안하는 것과 같아요.
대표님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물건을 꼽는다면요?
삐뚤삐뚤한 그릇?(웃음) 비정형적이고 표면도 매끄럽지 않은데 자꾸만 손이 가는 접시, 그거라면 저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외의 답변인데요?
그런가요?(웃음)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젊은 때를 지나 공간에 빠져 긴 시간을 살았어요. 다른 길로 접어들 때 엄청난 강단이 필요하거든요. 그만큼 열심히 살아내며 에너지도 쏟았고요. 뭐든 남들의 두 배로 노력하려 했어요. 매끄럽지만은 않았죠.
대표님과 같은 커리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요?
하나의 브랜드나 스타일에만 몰두하지 말 것. 좋은 것을 어떻게 기획해 확장할 수 있을지, 또 많은 작품 중 어떤 것을 골라 구체화한 기획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해요. 단면을 보기보다 아우른 감각을 키우는 게 중요하죠. 저 역시 너무 단일한 감정, 생각, 프로세스에만 갇히지 않고 균형감 있게 생각하려고 늘 애써요.
언제 휴식한다고 느끼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것보다 무언가에 몰두한 순간 휴식을 느껴요. 복잡하고 잡다한 생각,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 명쾌해진 기분을 느끼죠. 일과 삶의 분리를 꿈꾸지만, 굉장히 힘들어요. 라이프스타일 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삶과 일을 분리한다는 게 어불성설일 수 있고요.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엔 전시와 작가들을 위한 공간인 지하층과 1층만 개방할 생각이었는데 여러 매체에서 그 위층의 제 주거공간을 궁금해했어요. 사람들 역시 제가 ‘진짜 쓰는 물건’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요. 일과 삶을 나누기보다 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려주는 게 더 진정성 있다고 판단한 거죠.
좋은 물건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
그럼요. 일상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행위를 할 때 늘 곁에 물건들이 있잖아요. 책을 읽을 때 밑줄 긋는 펜이 될 수 있고, 차 한 모금을 마실 때의 얇은 유리 찻잔이 될 수도 있겠죠. 나의 순간을 만들어 주는 물건을 바라볼 때 머무는 시선이 달라지고 더 아껴서 만지게 되죠. 그것만으로도 태도가 바뀐 거예요. 바뀐 태도는 인생을 바꾸고요.
삶에서 미의식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누구나 늙잖아요. 그런데 일상이 무료해지면 몸과 마음을 넘어 삶 자체가 늙는 듯해요. 반대로 매 순간 효율을 따지며 바쁘게 살면 주위가 썰렁해지고요. 아름다움은 마음의 온도를 살짝 높여주는 것 같아요. 대단한 것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잠시 휴식하며 마시는 커피 한잔, 파란 하늘, 흘러나오는 노래 같은 것들이 감정의 온도를 올려줘요. 이때 터지는 감탄, 전 이걸 미의식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