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애정의 관점으로
삶의 계단을 쌓아 올립니다

A   PERSONA   19

작가, 김희원

Dec 19, 2024

김희원은 시선의 이야기를 중첩하는 작가다. 창문, 초, 샹들리에, 물가 등 그의 촬영 작품에는 그곳을 점유한 사람의 시선과 시대적 이야기 위로 작가의 해석이 투영된다. 그는 호기심과 애정이 이야기의 깊이를 만든다고 말한다.

지난 9월 미국 나파밸리의 세븐 스톤즈 에스테이트 Seven Stones Estate로 레지던시를 다녀왔죠. 어떤 과정이었나요?

레지던시를 다녀오기 전 미리 1월에 나파밸리 Napa Valley에 방문해 장소를 살펴봤어요. 기왕 와이너리에서 작업을 한다면, 수확하는 시기가 좋겠다고 생각해 9월로 레지던시 일정을 맞췄죠. 9월 전까지 최대한 많은 와인 관련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어요. 레지던시에서는 하루하루 일기 쓰듯 코르크, 라벨, 병, 메이커, 포도 등 와인에 대해 기록했고요. 이 기간 동안 창문을 찍은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와인은 포도를 경작해 수확하고 숙성을 거쳐 병입하는 과정을 통해 그 모든 시간과 맛을 합친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과 풍경이 시간대별로 변화하며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장면들을 포착하고 그 사진들을 한장으로 합성했어요. ‘합쳤다’는 의미에서 와인과 저의 창문 사진이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죠.

창문과 그 밖 풍경이 중첩된 하나의 사진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군요.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는 약 15년 전부터 시작했죠?

네 아마 죽을 때까지 이어갈 작업이 될 거예요. 창문 하나 찍는데 보통 3~5년이 걸려요.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해 보려고 해요. 창문 주인의 태생부터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누구를 사랑했고, 자녀는 어떻게 키웠으며,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인물의 삶과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몇 해 전부터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의 창문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데요, 마그리트가 체스를 즐겼대요. 그럼 마그리트는 누구와 함께 체스를 뒀는지, 그와 어떤 카페에서 만났는지 등을 찾아보며 루트를 계속 좇는 식이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군요. 영감의 원천이 마르지 않겠어요.

결국 호기심이에요. 그리고 다행히 이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삶의 깊이와 지식의 수준을 쌓아 올리는 거예요. 아직도 멀었어요. 디자인이든 순수 예술이든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복잡해요. 그래서 저는 이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가 보려 해요. 그 과정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충분히 생각해 보고, 현재의 단계에 충실하려 하죠.

“내가 바라보는 것에 얼마큼의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공유하려 하는가에 대한 결과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진과 영상 작업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지만, 제품 디자인과 목조형 가구 학과를 전공 후 멘디니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멘디니 스튜디오에서는 ‘언어’를 배웠어요. 디자인 언어, 조형 언어 등이요. 그곳의 언어는 알렉산드로 멘디니 Alessandro Mendini의 언어였어요. 모든 직원이 그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해 제품을 완성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죠. 그런데 저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제 언어를 고민했어요. 나라면 이 제품을 어떻게 만들까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저 스스로가 내 입장과 관점을 대입해 나의 것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내가 잘할 수 있고, 어떤 걸 하고 싶은 지 끊임없이 자문했고, 그 질문이 사진과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던 것 같아요.

디자인 분야의 배경이 현재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거꾸로 가는 프로세스를 적용해볼 수 있어요. 작품 설치를 마치고 난 뒤의 공간에서 시간을 되돌려보는 거죠. 이 작업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규격, 설치 방법, 벽에 거는 구조 등에 대한 프로세스와 기준을 더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컬렉터 분들이 작품 의뢰를 하면 작품을 걸 공간에 가능한 한 먼저 가보는 편이에요. 그 공간에 놓인 가구의 색감과 언어가 맞는지도 확인하죠. 공간의 전체적 맥락을 다 맞춰주는 것까지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핀 율 Finn Juhl, 르코르뷔지에 Le Corbusier,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등 많은 거장의 창문을 촬영했잖아요. 인물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디자인과 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거장들이지만, 제 시각에서 그들을 묶을 수 있는 기준은 미학과 관련이 깊어요. ‘아름답다’고 하는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죠.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결부되어 있군요.

대부분 그 작업이 등장한 시대상과 어떤 이야기가 작품에 녹아 있고, 제가 그 이야기에 공감할 때 더 큰 아름다움을 느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의 호기심과 호기심에 따르는 노력 역시 아름다움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제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췄고, 어떤 시각적인 훈련을 하는지, 아름다움을 보고자 얼마큼의 시간과 호기심을 쏟는지에 따라 삶에서 미학을 경험하는 수준 역시 달라진다고 믿죠.

누군가의 창문 외에도 누군가의 문, 누군가의 흔적, 누군가의 초, 누군가의 초상화 등 ‘누군가의’로 시작하는 작업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의 작업 세계는 ‘빈집’이에요. 빈집에 제가 저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작업을 가구처럼 차곡히 채워 넣는 거죠. ‘누군가의 초’ 시리즈는 저의 조명이고, ‘누군가의 창문’과 ‘누군가의 문’은 각각 창문과 문이 되는 거죠.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가구나 오브제들을 나라면 어떻게 만들까?”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채워 넣는 경험을 쌓고 있어요. 각각의 사물과 작품에 대한 깊이를 알아가는 작업이 곧 작가가 하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휴식은 어떻게 취하나요?

저는 촬영하는 걸 업으로 삼은 삶을 살고 있잖아요. 제가 비 오는 날 촬영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일기예보를 보고 쉽니다. (웃음)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죠. 머리가 복잡할 때는 바다에 가서 둥둥 떠 있기만 할 때도 있고요. 의자를 들고 숲으로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아니면 뛰어요. 제 스트레스나 감정의 정도에 따라 러닝 코스의 길이가 달라지죠.

삶의 원동력이 되는 존재가 있나요?

부모님과 굉장히 가까운 편이에요. 오늘과 같은 인터뷰가 있을 때도 미리 공유해주신 질문지를 토대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 보기도 하고, 영화를 본 뒤 ost를 다시 들어보며 서로 느낀 점들과 음악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들이 따뜻해요. 이 온기가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고 생각해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잖아요. 삶은 내가 바라보는 것에 얼마큼의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공유하려 하는가에 대한 결과인 것 같아요.

에디터 한동은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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