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오래 가는 브랜드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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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 대표, 김현경·조나단 타운젠드

Dec 25, 2025

빠른 브랜딩과 공격적 확장, 프랜차이즈 엑싯이 일상이 된 한국 F&B 시장에서 스코프는 드물게 속도를 늦추는 베이커리다. 김현경과 영국인 남편 조나단 타운젠드는 오래 먹고 싶은 맛을 기준으로 영국 디저트의 질감과 정서를 한국에 맞게 다듬어왔다. 그들이 바라는 스코프의 미래는 사랑방 같은 변치 않는 동네 가게다. 천천히 쌓인 시간의 맛을 지켜내며 손님과 함께 늙어가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빠른 시장 흐름 속에서도 조용하고 단단하게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스코프’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현경) 가게 이름을 고민하던 중 조나단이 제안했어요. 스코프 Scoff는 ‘허겁지겁 먹다’와 ‘비웃다, 조롱하다’라는 두 의미가 있는 단어로 영국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죠. 영국식 유머와 먹는 행위가 겹쳐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고, 설명적인 상호 대신 여지를 남긴다는 점도 좋았어요. 영국 친구들도 “베이커리 이름으로 잘 어울린다”라고 말해주어 결정했습니다.

주변에서 ‘전형적인 한국인 같지 않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요?

(현경) 저희는 둘 다 ‘전형적인 한국인’, ‘전형적인 영국인’이라는 틀에서 조금 비켜난 사람들이에요. 나이대도 비슷하고, 각자 성장 과정에서도 문화적 규범이나 기대를 강하게 따르지 않는 편이었죠. 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에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실패를 걱정하기 보단 “일단 해보면 알겠지”에 가까운 성격이었어요. 이런 성향이 해외 생활을 오래 버티는 데도 도움이 됐고, 스코프를 시작할 때도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용기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스코프를 창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조나단) 영국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셰프 경력을 쌓았고, 호주·중국·한국에서도 요리사로 일했어요. 집에서도 늘 빵과 케이크를 구울 만큼 베이킹을 좋아했고요. 우연히 플리마켓에 참여하게 되며 스콘을 판매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그 경험을 계기로 베이커리를 열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코프를 시작한 거예요.
(현경) 부암동 매장은 저희의 첫 베이커리이자 기반이에요. 당시엔 지금의 절반인 7평 남짓한 공간에 주방·카운터·매대가 모두 들어가 있었죠. 새벽에 출근해 케이크를 굽고 채우기를 반복했는데, 한 명은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제가 회사에 다니며 조나단을 도왔어요. 저희와 동생 부부까지 넷이 시간을 쪼개 매장을 지켜왔고, 지금도 공동 창립자이자 동업자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플리마켓에서 선보인 첫 메뉴이자 스코프의 대표 메뉴로 스콘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조나단)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스콘만한 것이 없죠. 영국에서는 보통 크림과 잼을 듬뿍 발라 먹는데, 단품으로 먹기에는 다소 퍽퍽할 수 있어서 반죽의 수분감과 배합을 조정했어요. 저희 스콘은 공기를 데워 열을 고루 공급하는 컨벡션 오븐 Convection oven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굽는 방식이라 일반적인 스콘보다 빵에 가까운 식감이 특징이죠. 이런 방식들이 스코프 스콘의 기준이 되었고, KFC 비스킷을 스콘으로 떠올리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며 자연스럽게 대표 메뉴가 됐습니다.

스코프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요?

(현경)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오래 걸려도 천천히 깊어지는 곳이요. 10년 넘게 직접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제안도 정중히 거절해왔습니다. 스콘, 브라우니, 레몬 케이크, 생강 케이크 같은 시그니처 메뉴는 처음 레시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스코프의 핵심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있으며, 전통 영국 레시피를 스코프답게 꾸밈 없고(rustic)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입니다. 저희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오래 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오래 걸려도 천천히 깊어지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강북, 특히 부암동과 서촌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입니다.

(현경) 강북은 제가 태어나고 대학까지 다닌 곳이에요. 정동, 인사동, 북촌, 서촌은 제게 가장 익숙한 동선이죠. 연애 시절 조나단에게도 이 동네들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게 됐고, 그 또한 오래된 정서와 조용한 분위기에 금방 매력을 느꼈어요. 강남의 편리함도 좋지만, 저희는 오래된 나무, 낡은 벽, 정감 있는 카페와 책방에서 오는 감정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매장 자리를 알아볼 때도 유동인구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인가’를 더 중요하게 봤고요. 손님들이 “스코프와 이 동네가 참 잘 어울린다”라고 말할 때, 저희가 느끼는 감각이 손님에게도 전해졌다는 걸 실감했어요.

스코프다운 순간을 만들어주는 건 결국 고객일 텐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현경) 초창기 부암동 매장에 자주 오던 할머니, 할아버지 고객이 떠올라요. 할머니는 레몬 케이크를 특히 좋아했고, 할아버지는 “단 건 잘 안 먹는다”면서도 늘 케이크를 하나씩 사 갔죠. 서촌 매장을 열었을 때도 두 분이 일부러 찾아와 “축하한다”며 5만 원 지폐가 든 봉투를 조용히 건넸어요. 새로운 공간을 냈다는 사실을 가족처럼 기뻐하는 마음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또 메뉴를 아주 조금만 바꿔도 금방 알아채는 손님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마다 “이곳을 정말 애정 어린 눈으로 보고 있구나” 싶어 큰 힘을 얻습니다.

한국에서 영국식 베이커리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현경) 새로운 메뉴를 시장에 안착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완전히 생소한 제품은 손님들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초기에 레몬 케이크나 생강 케이크처럼 맛의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는 메뉴부터 선보인 것도 그런 이유였죠. 그래도 희망적인 건, 예전에 비해 영국식 디저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이에요.
(조나단) 가장 크게 부딪힌 건 건포도였어요. 영국에서는 너무 흔한 재료라 한 번도 호불호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영국의 전통적이고 평범한 레시피가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심에 늘 건포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죠. 또 “단맛을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론 완전한 저당보다 ‘균형 잡힌 단맛’을 선호해요. 그래서 설탕을 무작정 줄이기보다 소금과 산미로 밸런스를 맞추고 있어요.

베이커리를 창업하려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현경) 요즘 F&B 시장은 트렌드 변화가 너무 빨라요. 그 흐름만 따라가면 지치고, 자기 색을 잃게 되죠. 살아남으려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해요. 플리마켓·온라인·팝업 등으로 충분히 테스트해보고, 피드백과 공정을 점검한 뒤 오픈해도 늦지 않습니다.

부부이자 동료로서 서로가 어떤 창작적 자극을 주고받나요?

(현경) 조나단은 늘 새로운 메뉴, 영국·유럽의 F&B 흐름을 탐색해요. 지인들에게 듣거나 직접 리서치해 가져온 아이디어를 ‘스코프에서는 어떻게 구현할까’로 번역하는 것이 제 역할이고요. 10년 넘게 거의 매일 붙어 지내다 보니 서로의 리듬을 너무 잘 알아 말보다 눈빛으로 먼저 의도를 전달할 때도 많아요. 집에서 차를 마시거나 산책 중 나눈 대화가 회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실제 메뉴나 공간에 반영된 적도 많습니다. 다만 너무 가까우면 작은 감정이 커질 수도 있기에, 가끔은 “각자 하고 싶은 걸 하자”라고 거리를 두며 균형을 잡아요.

일을 떠나 두 분이 깊게 탐색하는 분야가 있나요?

(조나단) 오랫동안 LP를 수집해 왔어요. 브리티시 팝, 클래식, 한국 가요까지 음악을 정말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더 음악과 가까운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싶어요. 아내는 도자기를 오래 작업했고, 따로 작업실도 있어요. 저희와 함께 사는 고양이, 고래, 항아리 등 도자 오브제들을 다 직접 만들었죠. 저희 둘 다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해요. 언젠가 한적한 시골에서 가마를 만들고 도자기를 굽고, 직접 키운 작물로 음식을 나누는 삶을 상상하곤 합니다. 스코프도 그런 삶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젝트 같아요.

에디터 이은경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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