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한다면, 그만큼 열성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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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킴 디자이너·패션 디자이너, 김지용

Jun 12, 2025

지용킴은 김지용이 전개하는 패션 브랜드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옷을 좋아했던 그의 꿈은 자기만이 만들 수 있는 옷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었다. 김지용은 완성한 옷을 자연광에 한 달 이상 노출하는 방법을 고수하고, 이를 선블리치 기법으로 명명했다.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햇빛에 원단을 탈색하는 방식을 채택했기에 생산 속도도, 생산량도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그는 패션 업계에서 친환경 브랜드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김지용은 시류를 좇기보다 자기만의 일관된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안착시켰다. 인생 전부를 지용킴에 쏟아부었을 정도로 브랜드에 헌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용킴의 옷에는 시간이 빚어낸 흔적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디자이너 김지용의 삶에도 분명 아름다운 기억이 스며들어 있겠죠?

어릴 때 어머니가 옷 가게를 운영했어요. 저는 어머니가 물건을 떼러 다닐 때를 늘 기다리던 소년이었죠. 어머니의 ‘일’이 저에게는 ‘보물찾기’로 다가왔거든요. 의류 도매 시장에서 필요한 옷을 정확히 고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던 제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꽤 이른 시기부터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발견하는 일의 쾌감을 느껴왔던 셈이죠. 돌이켜보면 패션을 공부하면서도 특정 디자이너를 우상으로 삼거나, 유행하는 디자인 경향을 좇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정말 입고 싶은 옷을 찾는 과정에 공을 들인 것 같아요.

정말 입고 싶은 옷의 해답을 지용킴의 옷에서 찾을 수 있나요?

저는 지용킴 JiyongKim의 옷을 전부 직접 입고 평가해요. 실루엣과 디테일, 마감은 물론이고, 재킷에 달린 주머니의 위치나 깊이까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개선하죠. 어쩌면 저의 욕심일 수도 있지만,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된 옷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책임감이기도 해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옷을 판매한다는 건,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주로 데드 스톡 원단을 사용해 옷을 만들고, 완성한 옷은 원하는 빛깔과 패턴이 나올 때까지 햇볕에 그을립니다. 이런 제작 방식은 오래된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도처럼 보여요.

지용킴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의 옷을 찾아 입었어요. 옷을 너무 좋아하니까, 남들과 비슷한 옷으로 비교되는 게 싫었던 거죠. 저는 남들 앞에서 과시하거나 멋있어 보이기 위해 옷을 좋아한 게 아니라, 옷에 담긴 디자이너의 철학과 옷의 기원을 스스로 터득하는 과정을 즐겼던 것 같아요. 제가 빈티지 의류에 매료된 이유도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옷의 기원이 되는 형태가 많았기 때문이죠. 빈티지 의류는 가치를 모르면 그저 낡은 옷에 불과하지만,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겐 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치가 있죠. 빈티지 의류처럼 오래돼 보이는 효과를 염색 방법으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당시 옷을 만들던 디자이너의 생각과 그 옷을 입은 이들의 삶까지는 표현할 수 없잖아요.

‘선블리치’ 기법을 창조하고,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이유도, 진정성 있는 옷을 만들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의지 표명에 가깝군요.

약 한 달 반 동안 야외 펜스에 걸어 햇볕과 비, 바람을 그대로 맞은 옷에는 원단의 자연스러운 흐트러짐과 시간의 흔적이 깃드는데, 이를 통해 단순한 멋을 넘어선 깊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옷의 생산은 더디고, 상황에 따라 원하는 옷의 패턴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옷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어요.

“데드 스톡에서 원하는 원단을 찾고, 옷의 핵심인 테일러링에 집중했으며, 완성한 옷을 특정 장소로 가져가 원하는 빛깔과 무늬를 얻을 때까지 자연광에 노출시켰죠. 정말 수고스러운 과정인데요, 이는 저처럼 ‘옷에 미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2021년 6월에 지용킴을 론칭한 이후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상을 2년 연속 수상했고, ‘하입비스트’에서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두 차례 선정됐으며,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죠. 신진 디자이너가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성과를 달성한 셈인데요. 부담감도 클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일에만 몰두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웃음) 부담감을 느끼기보다는 제가 하는 걸 멋있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했거든요. 일본 도쿄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과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Central Saint Martins에서 패션을 공부했는데, 해외에 오래 있다 보면 제가 인식하지 못하던 한국의 이미지와 직면할 기회가 있거든요. 한국 패션을 좋게 봐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패션을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라고 평가했죠. 그때 다짐했어요. 저만의 독창성으로 패션 시장에 도전장을 내겠다고. 데드 스톡(재고)에서 원하는 원단을 찾고, 옷의 핵심인 테일러링에 집중하며, 원하는 빛깔과 무늬를 얻을 때까지 자연광에 노출시켰죠. 정말 수고스러운 과정인데요, 저처럼 ‘옷에 미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2022년 6월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장충동 작은 지하 공간에 작업실 겸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작년까지도 마찬가지였고요. 지난 4월 오픈한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마주하니 왠지 모르게 뭉클하네요.

저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팀원 모두가 오늘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해요.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빛이 환하게 새어 들어오니까 저 또한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고요. 제가 브랜드를 시작할 때 다짐한 게 있거든요. 도버 스트리트 마켓 Dover Street Market에 제 옷을 판매하는 것과 서울에 제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여는 것이요.

둘 다 이루었네요. 지용킴은 늘 자신의 이름으로 승부하는 것 같아요. 꾸준히 ‘지용킴 익지비션’이란 이름의 전시를 선보이는 것도 그렇고요.

제가 만든 브랜드니까 누구보다 제가 잘 설명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만의 언어로 저의 옷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지용킴의 옷을 보면 ‘투 웨이’ 혹은 ‘쓰리 웨이’로 입을 수 있는 재킷이나 팬츠가 많거든요. 웹사이트나 소셜 미디어, 혹은 편집매장에서 보이는 이미지로는 그걸 온전히 설명할 수 없겠더라고요. 옷에 왜 이런 디테일 요소가 들어갔는지, 이를테면 재킷의 칼라 형태나 단추 위치 같은 걸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전시 형태가 좋다고 봤죠. 팝업 쇼케이스가 아닌, ‘지용킴 익지비션 JiyongKim Exhibition’이라는 타이틀로 컬렉션을 선보였기 때문에 고객들이 옷을 작품처럼 깊이 있게 바라봤다고 생각해요. 매번 전시 때마다 선블리치 하기 전과 후 의상을 나란히 배치하는 이유도, 비교해 보지 않으면 선블리치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브랜드를 론칭하고 지금까지 6번의 전시를 했고, 슈퍼 73, 클락스 오리지널스, 알파 인더스트리, 삼성전자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생각을 게워 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언제 온전한 휴식을 느끼나요?

아직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용킴을 성장시키기 위해 달려왔는데요, 여전히 달려야만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대학 시절에 크리스토프 르메르 Christophe Lemaire가 전개하는 ‘르메르 Lemaire’와 지금은 고인이 된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가 이끌던 ‘루이비통 Louis Vuitton’에서 디자인 어시스턴트 실무 경험을 쌓았어요. 당시 두 사람 밑에서 제가 배운 건 ‘일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었어요. 크리스토프나 버질은 이미 성공한 천재 디자이너잖아요. 그런데도 그들은 업무에 관해서만큼은 한 시간도 허투루 허비하지 않더라고요. 크리스토프는 옷에 대한 집착이 엄청났어요. 함께 일한 어시스턴트들이 그의 그런 성향을 힘들어했는데, 저는 또 그게 잘 맞더라고요. 그를 통해서 디자이너는 고객이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걸 배웠죠. 버질은 늘 아이폰 두세 개를 들고 다닐 정도로 바쁜 디자이너였어요. 하루는 도쿄 행사장에 모습을 비추고, 그다음 날은 파리 오피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더군요.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저라면 저렇게는 못 살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일에 미쳐 있는 그의 모습을 동경하고 그의 뒤를 따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루이비통 쇼가 끝나면 곧바로 “원 모어 투 고 One more to go”라고 외쳤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옷을 좋아한 소년이 디자이너가 되어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냈어요. 꿈을 이룬 기분이 어때요?

졸업 작품으로 선보이려던 게 선블리치한 옷이었어요. 헌데 코로나19로 졸업 전시가 전면 취소됐어요. 하는 수없이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아이폰으로 의상을 촬영해 하나둘 올렸는데, 놀랍게도 일본의 편집숍 ‘그레이트(GR8)’로부터 졸업 컬렉션 전부를 바잉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죠. 그게 지용킴의 시작이었어요. 어떤 준비도 없이 브랜드를 시작하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스튜디오 팀원이 하루를 이틀, 사흘처럼 살았어요.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시기를 인내했기에 지금의 지용킴이 된 것 같아요. 분명 꿈을 이룬 건 맞지만, 아직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브랜드의 가치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죠. 그러니 제 꿈은 아직도 저 먼발치에 있어요.

에디터 서재우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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