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경청의 태도에서
자기다운 감각이 시작됩니다

A   PERSONA   35

아트 디렉터·아트먼트뎁 대표, 김미재

May 22, 2025

아트 디렉터 김미재는 디자인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을 구조화하고 정서의 결을 읽어내는 데 집중한다. 오랜 시간 이끌어온 아트 디렉팅 스튜디오 아트먼트뎁에서 그는 사람과 삶의 방식을 관찰하고, 감각을 다듬는 훈련을 거듭해왔다. 그렇게 축적된 태도는 자신의 기억과 취향을 바탕으로 한 한국차 브랜드 ‘티 컬렉티브’로 확장되었고, 다시 외부 프로젝트에도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감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기반이 된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사람’에서 출발해 첨예하면서도 세심한 감각으로 완성된다.

아트 디렉터로서 18년 동안 주로 어떤 일들을 해왔나요?

아트 디렉팅이란 분야는 일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패션, 뷰티, F&B, 라이프스타일 등 전 분야의 브랜드를 다루게 됩니다. 워낙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넘나들다 보니 모든 것을 최대한 면밀히 관찰해요. 미팅 전부터 클라이언트의 성격과 취향을 세세히 파악하고, 어떤 옷을 입는지 평소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미리 살펴봐요.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그 사람의 생각과 취향을 계속 끌어내려고 하고요. 그렇게 모은 단서를 기반으로 무드 보드를 구성한 뒤 함께 살펴봅니다. 여러 이미지를 모을 때도 있지만,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어요. 공감이 되어야 어떤 작업이든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는 무드 보드의 적중률이 높은 편인가요?

그럼요. 많은 분이 제가 디자인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가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숨은 의도까지 정확하게 포착해 결과물로 구현하는 일이에요. 상대의 감정을 진심으로 수용한 다음, 거기에 제 감각을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내려고 해요. 자칫 제 취향만 고집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잘 되는 경우가 없더군요. 올해로 5년째 아트 디렉팅 수업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항상 아트 디렉터는 충실하고 성실한 리스너여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경청이 좋은 결과를 내는 비결인 거군요.

좋은 디렉팅은 결국 사람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에서 갈려요. 감정과 사고의 결을 읽는 면밀함과 진득함 없이는 시작조차 안 돼요.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타협은 하지 않아요. 상대 의견에 맞추되, 억지로 설득하려 들진 않죠. 그건 오랜 경험을 통해 몸에 밴 방식이에요.

가장 최근에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결단을 내린 순간이 있나요?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는 편이에요. 지난달에 다녀온 밀라노 출장도 출국 이틀 전에 티켓을 끊었어요. 티 컬렉티브의 시작도 그랬고요. 백화점 라이프스타일존 내 팝업에 들어갈 한국 차 브랜드를 찾다가, 마땅한 곳이 없어서 “그럼 우리가 하자”고 선언했고, 실제로 3개월 만에 브랜드를 만들었죠. 다들 의아해했지만, 저는 한국차를 정말 좋아했고 감각적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그 도전이 저에게도 새로운 자신감과 자유에서 오는 즐거움을 안겨줬지요.

“좋은 디렉팅은 결국 사람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에서 갈려요. 감정과 사고의 결을 읽는 면밀함과 진득함 없이는 시작조차 안 돼요.”

티 컬렉티브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는 동시에, 클라이언트로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를 만날 텐데요. 브랜드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은요?

사람이에요. 창업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사람의 고민이 브랜드에 녹아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진정성, 그것만으로도 브랜드의 설득력이 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의 공통점도 결국 사람입니다.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뉴욕의 테이블웨어 브랜드 고하르월드 Gohar World를 만든 라일라 고하르 Laila Gohar, 세심한 환대와 편안한 음식을 선보이는 브런치 카페 아틀리에 셉템버 Atelier September의 프레데릭 빌레 브라헤 Frederik Bille Brahe 같은 사람들이죠. 제품이나 공간도 물론 멋지지만, 라일라가 고하르의 커틀러리를 사용하는 순간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나 프레데릭이 주방에 들어서는 찰나의 공기 변화는 그 자체로 인물이 브랜드임을 증명하는 지점이에요.

시각적 미감보다 태도나 이야기를 더 중시하네요.

요즘은 오히려 매끈하고 완성도 높은 브랜드에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본 듯한 비주얼이 반복되고, 정제된 문장이나 유려한 톤이 과잉된 시대니까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브랜드는 철학이 있는 브랜드예요. 고민 끝에 나온 단어, 이유 있는 결정, 사적인 이야기. 그런 것들이 감정을 움직이고 오래 남아요.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보다, 왜 만들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업을 위해 꾸준히 하는 루틴이 있다면요?

많이 보고, 성실하게 쌓아두는 일. 지금 당장 쓰이지 않더라도 폴더를 만들어 정리해 둬요. 워낙 훈련되어 있어요. 대학교 때부터 그랬으니까 20년도 더 넘었네요. 종이 잡지를 유독 좋아하고, 오래된 화가들의 서적은 정말 소중히 다뤄요. 빈티지 서적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나 이베이 e-bay와 같은 경매 사이트에 늘 비딩을 걸어놓는데요. 오래 기다려 겨우 손에 넣은 피카소 작품의 카탈로그 속 단 한 페이지가 프로젝트를 풀어나가는 데에 핵심 열쇠가 된 적도 있어요. 그러나 단순히 ‘좋다’로 끝내지 않고, 왜 좋은지를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일과 가정생활, 둘 다 단단하고 멋지게 꾸려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잘하는 게 뭘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지금이 제일 안정된 시기예요. 제 인생이 참 파란만장했거든요.(웃음) 제게 늘 힘이 되어 주는 건 아들 규하입니다. 규하가 없었다면 이토록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거예요. 너무 사랑스러워요. 늘 저와 단둘이 지내서 그런지 의젓하고, 배려가 몸에 배 절 울컥하게 만들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음악을 틀고 맥주를 꺼내서 예쁘게 코스터를 깔아 가져다줘요. 기특하게도 어릴 때부터 규하는 저를 존중하고 도와주는 법을 알았어요.

만약 지금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주어진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 것 같나요?

음악을 하고 싶어요. DJ는 못할 것 같지만요.(웃음) 디자이너로 살면서도 음악 신의 사람들을 늘 동경했어요. 작년에 DJ인 남편이 베를린의 클럽 베어카인 Berghain에서 음악을 틀었는데요. 디제이들 사이에서는 꿈의 베뉴래요. 남편은 기대와 흥분에 가득 찼고, 후배들은 그를 응원하고 보러 베를린까지 왔어요. 다들 아이처럼 정말 행복해 보였지요.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디자인할 때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일하며 저렇게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이 있나?” 음악에는 감정을 순식간에 움직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고 완전하게 믿게 됐어요.

에디터 최선우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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