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쌓이는 공간을
설계합니다

A   PERSONA   63

건축사사무소 오드투에이 소장, 이희원·정은주

Jan 22, 2026

이희원과 정은주가 이끄는 건축사사무소 오드투에이는 대상을 향한 존중과 헌사를 뜻하는 ‘오드 투 Ode to-’에서 출발한 이름으로, 매 프로젝트를 깊은 몰입의 태도로 대한다. 건축가 듀오는 건축을 개인의 삶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산이자, 도시 풍경을 이루는 공공재로 인식하며 서로 다른 성향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할 수 있도록 작업의 기준을 세워왔다. 이들은 사용자의 시간이 축적될 때 비로소 장소가 완성된다는 믿음 아래, 즉각적인 인상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풍경을 완성한다.

건축가의 역할과 작업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나요?

(희원) 요즘 건축 교육은 건물 설계를 넘어 다양한 영역을 다뤄요. IT 기반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Computational Design이나 가구·오브제처럼, 전통적인 건축의 범주를 벗어난 작업들도 함께 다루죠.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윗세대와 저희 세대가 이런 방식을 먼저 접했고, 그 경험이 쌓이면서 건축을 단순히 ‘건물’로만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지금 세대의 건축은 하나의 영역을 한정하기보다, 시야와 접근 방식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공간’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희원) 전체를 경험한 뒤에 좋은 기억으로 남고, 무엇을 담아도 이질감이 없는 도화지 같은 공간이요. 설계 과정에서의 소통과 협력은 물론, 이후 사용되며 흔적이 쌓이는 시간까지 모두 포함돼야 비로소 좋은 공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완결된 형태를 드러내기보다, 사용하는 사람의 행위에 여백을 남겨두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공간에서 축적되는 인식과 경험이니까요.

오드투에이의 작업물에서는 중성적인 뉴트럴 톤이 인상적입니다. 두 분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일까요?

(희원) 작업물 대부분 클라이언트 각자의 취향이 분명해 단정하긴 어렵지만, 저희가 제안하는 디자인에는 확실히 중성적이고 뉴트럴한 무드가 많아요. 겉으로는 흰색이나 회색처럼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명도가 미묘하게 다른 화이트를 사용하거나 재료의 가공 방식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감각의 층위를 만듭니다. 사진에 담기지 않는 결까지 설계하면서도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배경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어요. 건축은 오래 남는 작업인 만큼, 시간이 흐르면 유행도 바뀌고, 건축주의 생각 역시 달라집니다. 그래서 강한 콘셉트보다 일관된 배경이 더 오래 대응력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종종 “색깔이 없다”라는 이야기도 듣지만, 저희에게 뉴트럴함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균형과 여백에 가까운 성격이에요.

두 분이 공통으로 좋아하는 건축물이 있다면요?

(희원) 뉴욕의 모건 라이브러리 Morgan Library를 좋아해요. 1900년대 초 맥킴, 미드 앤 화이트 McKim, Mead and White가 설계한 고전적 석조 건물에, 2006년에 렌조 피아노 Renzo Piano가 증축을 맡으면서 기존 건물 사이에 유리와 철 구조의 현대적인 볼륨을 삽입했죠. 옛 건물이 지닌 시간성과 현대적 구조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에요. 구조와 기술을 드러내되 과장하지 않고, 주변 맥락을 세심하게 읽어낸 건축물로,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맥락을 읽고 연결하는 태도’가 잘 구현된 사례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완결된 형태를 드러내기보다, 사용하는 사람의 행위에 여백을 남겨두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공간에서 축적되는 인식과 경험이니까요.”

작업에 있어서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은주) 지형과 맥락을 읽는 일은 프로젝트의 첫 단추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별다른 정보 없이 건축물이 놓일 동네 주변을 걷습니다. 동네의 결, 소리, 빛, 동선 같은 것들을 몸으로 먼저 느끼기 위해서죠. 그렇게 얻은 첫인상을 바탕으로 법규, 지형, 현황, 재료 같은 조건들을 분석해요.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현장을 돌면 처음엔 보이지 않던 요소들이 하나둘씩 읽히기 시작하죠. 실제 장소를 먼저 경험하는 방식은 건축을 공공재로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돼 있어요. 모든 건축 설계의 출발점은 그 동네 분위기와 풍경을 읽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던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은주) 패션 브랜드 ‘얼바닉30 Urbanic30’과의 작업이요.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와 일본 아오야마 스토어, 두 지점을 디자인했는데 스케일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지만,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로 낯선 감각을 전달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목표는 같았어요.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도 해상도를 높인 공간을 지향했고, 뉴트럴 톤을 기반으로 우드와 석재 같은 자연 소재,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상황에 맞게 조합해 일반적인 쇼룸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희원) 과정에서도 만족도가 컸어요. 보통은 샘플링에 비용 부담이 커 여러 시도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같은 석재라도 가공 방식과 패턴, 사이즈를 달리하며 충분한 테스트를 거쳤죠. 그 결과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는 빛의 각도와 시간에 따라 그림자가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까지 구현했고, 일본 아오야마 스토어는 마루의 광택과 도장 방식 등 재료 선택을 여러 실험을 통해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었어요.

함께 일하는 파트너인 동시에 부부이기도 하죠. 서로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은주) 희원 소장을 보면 “다정함이 이긴다”라는 말이 떠올라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죠. 늘 배우고 싶은 부분이에요. 저는 타협보다는 기능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을 중시하는 편인데, 그럴 때 희원 소장이 한 번 더 조율해 보자고 제안하면서 균형을 맞추죠.
(희원) 감정이 앞서면 결과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다정함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끊어야 할 순간에 결정을 미루게 되는 단점도 있죠. 그럴 때 은주 소장의 이성적이고 빠른 판단이 매우 큰 도움이 돼요. 디테일을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 역시 강점이고요. 서로의 강점은 다르지만, 각자 다른 방향에서 타인과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보완해 나가는 것 같아요.

오드투에이를 개소한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그 시간 동안 달라진 점과 오히려 더 선명해진 태도가 있다면요?

(희원) 프로젝트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때로는 “일을 늘려야 하나?” 같은 유혹과 고민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온 방향이 앞으로의 십 년에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하던 때와 비교하면 팀과 작업 태도는 더 단단해졌고, 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신감도 분명히 달라졌어요. 그 과정에서 끝까지 붙들고 온 것은 건축가로서의 직업윤리와 작업에 임하는 태도예요.
(은주) 지난 십 년은 처음의 마음을 지키는 처절한 방어전에 가까웠어요. 개소 당시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의 오투에이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건축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예측하나요?

(희원) 요즘은 건축주가 AI를 활용해 저희가 제안한 디자인을 본인 취향에 맞게 더 발전시켜 오기도 해요. 이미지 완성도도 워낙 높아져서 부담을 느낄 때도 있죠. 하지만 건축은 실제로 구축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담아낼 수 있는 영역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요. “도면을 예쁘게 그린다”라는 말은 단순히 이미지를 잘 만든다는 뜻이 아니에요. 누구나 직관적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능력을 말하죠. 그 밀도가 설계 전반에 반영될 때, 결과물의 완성도 역시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봐요. 디지털 이미지가 많은 것을 대체하더라도, 재료의 쓰임이나 비례, 빛처럼 몸으로 체감되는 감각의 가치는 오히려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에디터 이은경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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