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나눌 때 삶은 더욱 깊어집니다

A   PERSONA   44

뮤지션, 이상순

Jul 24, 2025

이상순은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 세계관을 구축한 아티스트다. 보사노바부터 모던 록, 애시드 재즈, 하우스, 테크노 음악 등 매 순간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음악을 추구해 온 그는 라디오 마이크 앞에서는 특유의 편안함으로 두 시간의 방송을 여유로 채운다. 이상순은 음악뿐 아니라 커피, 사진 등 좋아하는 것들을 삶 속에서 천천히 일로 확장시키며, 자신의 감각을 타인과 나누는 일에 꾸준한 애정을 쏟고 있다. 그런 취향의 공유는 그에게 또 다른 창작의 방식이자, 삶의 깊이를 더하는 즐거움이다.

11년의 제주살이를 마치고 서울에 왔어요.

쉼에 대한 감각을 충분히 누렸던 시절이었죠. 그 여유가 서울에 온 지 8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고요.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은 평창동은 느낌이 독특해요. 주위에 산이 있어서 집에 있을 땐 제주처럼 고즈넉하지만 차 타고 몇 분만 나오면 활기찬 도시 풍경을 만날 수 있으니 재밌죠. 아내와 강아지들과 함께 매일 산책을 하는데 주위 산책 코스가 참 좋아요. 제일 좋아하는 코스는 부암동 가는 길이에요. 저녁 먹고 슬슬 걸어서 부암동 찍고 오면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요즘 그 루틴이 참 좋더라고요. 나고 자란 서울로 돌아왔지만, 새로운 느낌의 도시에 사는 기분이에요.

이사를 하면서 가구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들었어요.

집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다가 가구에 눈을 뜨게 됐어요. 특히 빈티지 가구의 세계가 엄청나더군요. 처음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아내가 감각이 좋다 보니 편안한 무드로 잘 꾸며서 만족스러워요. 노구치 이사무 Isamu Noguchi가 디자인한 커다란 아키라 버블램프도 달고 샬롯 페리앙 Charlotte Perriand이 디자인한 의자도 들였죠. 사실 가구는 전적으로 아내의 안목에 맡겨요. 저는 집 전체에 IoT 시스템을 설치했어요. 덕분에 아주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죠. (웃음)

집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나요?

서울에서 집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작업실이 있으면서도, 음악과 영화를 즐기고 요리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지하엔 AV룸을 꾸며서 음악 들으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2층에선 평창동 전망을 보며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해요.

서울에 와서 라디오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 의 DJ도 시작했죠.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루틴도 생겼을 텐데요.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자유롭게 살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루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음악을 듣고, 작업하고, 강아지 산책하고, 같은 시간에 잠에 드는... 그런 소소하고 평범한 루틴이요. 고정적인 라디오 스케줄이 생긴 후로는 남은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리 계획을 세우고 알차게 움직이려 하죠. 주말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몰라요.(웃음)

“저는 고민을 많이, 그리고 오래 해요. 추진력보다는 지구력이 강하다고 할까요. 오래 좋아하다 보면 결국 기회가 오더라고요.”

1998년 데뷔한 이래 27여 년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행보를 보여줬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음악을 포함해 제 인생 전체를 돌아봤을 때, 서른 무렵에 떠난 암스테르담에서의 유학 시절이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네덜란드에서 보낸 3년은 제가 가진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시기였죠. 외국인 친구들이나 교수님, 심지어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저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통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많이 경험했어요. 경계 없이 다양한 음악을 들었고,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전자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처음 들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도시 풍경에서도 많은 인상을 받았는데요. 건물들이 정말 오래됐지만 잘 보존되어 있고 동시에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땐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도입하더라고요. 전통을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 균형감이 인상 깊었어요. 지금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줬죠. 필름 카메라나 LP 등 아날로그적인 걸 좋아하지만 오디오, 스피커, 스마트폰 같은 테크 제품은 최신 모델을 선호하거든요.

주로 어떤 감정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나요?

음악을 만들거나 혹은 디제이, 방송 등 다른 일을 할 때도 ‘편안하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아, 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기보다는, 스스로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게 더 잘 맞아요. 뮤지션으로서 히트곡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없진 않지만, 그걸 목표로 삼는 순간 뭔가 부자연스러워지고 본래의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늘 ‘내가 지금 자연스러운가?’를 기준 삼아서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디제잉 할 때, 주로 테크노 음악을 트는 걸 봤어요. 테크노 장르 음악을 담은 앨범을 발표할 계획도 갖고 있나요?

글쎄요. 하우스나 테크노 장르를 만들고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꼭 그런 장르의 방향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디제잉 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저는 주로 LP로 디제잉을 하는데, LP 두 장을 가지고 템포를 맞추는 게 생각보다 섬세한 작업이에요. 시끄럽고 복잡한 공간 안에서 정말 미세한 움직임으로 조절해야 하거든요. 저는 음악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워요. 그렇게 집중해서 음악을 틀었을 때 반응이 곧바로 오면 그 에너지가 정말 크게 느껴져요.

뮤지션으로서 ‘일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오랜만에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섰는데,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저도 모르게 긴장이 스르르 풀리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아, 이런 게 나한테 잘 맞는 거구나’, ‘이래서 내가 이걸 하고 싶었구나’ 같은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큰 에너지가 돼요. 앨범을 낼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담아낸 곡의 감정을 누군가가 공감해 줄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순간이 참 좋더라고요. 저는 그런 식의 교류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억지로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요.

단순히 뮤지션으로 정의하기에는 커피, 사진 등 다양한 일을 해왔어요. 추진력이 좋은 편인가요?

저는 고민을 많이, 그리고 오래 해요. 추진력보다는 지구력이 강하다고 할까요. 오래 좋아하다 보면 결국 기회가 오더라고요.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언젠가는 맛있는 커피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어요. 그러다 기회를 얻어 카페를 오픈하기로 결심했고, 그때부터 정말 많은 카페를 찾아다니고 수많은 바리스타 분들을 만나면서 공부했죠. 저는 조금 관심이 생긴다고 바로 시작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죠. 일로 삼으려면, 충분한 공부와 연습 끝에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이 있나요?

사실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인 것 같거든요. 그런 실패 덕분에 오히려 더 나아갈 수도 있고요. 반대로, 성공에 대해서도 자만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인기든 뭐든, 올라가면 내려가는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모든 방면에서의 사랑. 애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있을 때 삶이 훨씬 더 윤택하잖아요. 낯설고 힘든 일이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해결하지 못할 건 없다고 믿어요.

에디터 한동은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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