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시도는 새로움이 아닌 다르게 보는 관점에 있습니다

A   PERSONA   24

폴스타 소속 자동차 디자이너, 이수범

Jan 30, 2025

지난 9월 출시한 폴스타 4는 과감한 디자인 시도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선정한 ‘2025 대한민국 올해의 차’ 디자인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중심엔 폴스타 4 총괄 디자인을 담당한 한국인 디자이너 이수범이 있다. 추상적 키워드로 출발해 기술의 집약체인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그는 전체적 균형과 혁신의 관점을 가다듬고 발견하는 것에 몰두한다.

노트 위에 흑심으로 그린 자동차 스케치가 현실에 등장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연필에서 노트로, 그리고 디지털 스크린으로 옮겨진 디자인이 클레이 3D밀링머신을 통해 실제 자동차 사이즈로 제작되어 나오는 순간은 잊혀지지 않아요. 클레이 덩어리가 저의 디자인으로 완성되어가는 광경을 보며 가슴이 벅차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죠. 바퀴를 제외한 외관 디자인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로 완성되어 가는데, 자동차 보다는 하나의 창작조형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자동차의 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또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하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낸 조형물에 생명이 깃드는 순간을 목격하는 듯합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종종 자동차 스케치를 했다고요. 그 시절의 자동차 디자인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에는 볼보와 GM 코리아, 서울디자인재단 등에서 인턴과 계약직으로 일을 했어요. 조금 더 다양한 색의 디자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크게 봤을 때는 하나의 주제를 정해 그것을 디자인으로 소통했다는 부분이 지금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학부 시절 GM 뷰익 Buick의 스폰서십으로 진행했던 한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데요. ‘아메리칸 젠틀맨 American Gentelmen’이라는 브랜드 소개 키워드에서 착안해 로맨스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도출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로맨틱한 순간은 언제일까?’라는 질문에서 서로를 감싸 안아주는 ‘포옹’을 주제로 천착했죠. 바퀴는 없지만 자동차의 특징을 가진 조형물을 클레이로 조각해 디자인을 완성했어요.

자동차라는 온전한 기계를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키워드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제가 외장 디자인 총괄을 맡았던 폴스타 4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진행했어요. ‘가장 다이나믹한 SUV 쿠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에어로다이나믹 (aerodynamic, 공기역학)을 염두해 기능적인 면을 완성했죠. 폴스타의 핵심 키워드는 Pure, Progressive, Performance 인데요. 폴스타 4를 마감할 때는 ‘Pure’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강조할 부분과 덜어낼 부분을 명확하게 해서 디자인의 균형을 맞췄죠. 예를 들어 브랜드를 표현하는 새로운 시그너처를 만들고 싶어, 헤드 램프에 듀얼 블레이드 Dual Blade를 적용했는데요. 램프가 많아 복잡해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라인과 마감을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정돈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혁신은 당연한 문법으로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폴스타 2의 프레임리스 사이드미러디자인, 폴스타 3의 외부디자인을 마무리하는 작업에 참여한 것에 이어 폴스타 4는 외장 디자인 총괄을 맡았어요. 어떻게 총괄 디자인을 맡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부담감은 없었나요?

컴팩트한 SUV 모델이 제작 준비 중에 있다는 소식에 2~3주 정도 스케치 작업을 하고, 이후 휴가를 다녀왔는데요. 복귀 후 제 디자인이 파이널 디자인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디자인 모델을 차고에 넣어 놓고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기간 동안 차고를 연 당시 CEO가 제가 디자인한 모델의 뒷모습을 보고 “이건 꼭 만들어야한다”고 얘기했다더라고요. 특히 후면 리어 윈도우를 과감히 삭제한 시도를 마음에 들어했죠. 디자인 스케치를 놓고 많은 디자이너들과 경쟁했다면 압박감이 심했을 것 같은데, 디자인 방향성이 뚜렷해서인지 부담은 크지 않았어요. 전체적 균형과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몰두하며 성취감을 더 크게 느꼈죠.

개인적으로도 여러 의미가 남은 프로젝트였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콘셉트에 가까운 제품을 구현하기 위해 15명 정도의 3D 모델러와 3명의 스튜디오 엔지니어 클레이 모델러와 협업해 리드 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를 이끌었죠. 램프 인테리어와 휠 디자인은 각 파트 전문 디자이너들과 협업했고요. 디자인 감각도 중요하지만 팀과의 신뢰와 의사소통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폴스타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혁신’에 대해서도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혁신은 당연한 문법으로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뒷유리를 없앤 것도 ‘어떻게 하면 SUV의 공간감을 유지하면서 쿠페의 다이나믹한 실루엣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탄생했죠. 덕분에 혁신적이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요.

혁신적이고 미래적인 자동차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로서 미래의 자동차 모습을 어떻게 예상하나요?

결국에는 자동차도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모습보다는 보다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가 혼재할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안정적으로 보편화돼서, 운전자별 사용 목적에 따라 여러 형태의 모습이 될 수 있겠죠. 대화에 집중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간단한 게임을 할 수 있는 모드가 있지 않을까요? 자동차 안에서의 활동이 중요해지면서 인테리어의 중요도가 더 커질 것 같아요. 운전의 즐거움을 그대로 느끼고 싶은 이들을 위해 자율 주행 모드가 필수는 아닐 것 같고요. 자동차의 퍼포먼스와 운전 경험도 여전히 중요할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뒤 지금은 스웨덴 예테보리에 정착해 일을 하고 있어요. 여러 문화권에서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지금도 폴스타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여러 문화와 그들의 대화법, 특징 등을 경험해 온 것이 많은 협업이 이뤄지는 업무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각 문화의 감성을 피부로 직접 경험했고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제 강점이죠. 같은 물건이나 공간을 보더라도 각 국가에서 통용되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저는 다양한 레퍼런스를 자연스럽게 얻은 셈이죠. 여러 문화가 섞인 저만의 독특한 개성과 독창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웨덴에 거주한지 올해로 벌써 9년차라고요.

2~3년차때만 하더라도 여름엔 너무 밝고, 겨울은 어둠이 너무 길어서 덩달아 감정기복이 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겨울에 각자 아름다운 조명으로 빛을 밝히는 스웨덴만의 차분한 감성과 분위기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걸 보니 비로소 제가 이 나라에 잘 묻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외 공원이나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하늘이 예뻐서 이런 계절과 자연을 통해 타지에서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을 얻곤 해요. 20~30분 정도 걸리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 다녀왔다가 집에서 쉬며 영화를 보는 소소한 일상을 보내요. 주말에는 주로 노트와 연필을 들고 조용한 단골 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공간과 사람을 드로잉하기도 하고요.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순수 드로잉과 페인팅을 배우던 어린 시절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자동차 디자인을 정말 재미있게 몰입해서 하고 있긴 하지만, 저의 경우 자동차가 너무 좋아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었다기 보다는 학부시절 우연한 계기로 흥미를 갖게 되어 커리어를 시작한 케이스에요. 그래서 자동차를 하나의 조각 예술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예술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계획은 없지만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기반과 제 취미인 드로잉을 결합해 다른 창작물을 만들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분명한 건 누군가의 삶에 영감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제가 이 곳에서 꾸준히 일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도, 기억에 강렬히 새겨질 만한 단 하나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남기는 것도, 자동차 디자인을 넘어 다른 차원의 예술적 저변을 넓히는 것도 누군가의 일과 삶에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제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에디터 한동은
포토그래퍼 알렉산더 소더링 Alexander Söderling


Recommended

A PERSPECTIVE is a digital content platform developed througha partnership between Magazine B and Pole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