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춤을 출 때 인생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A   PERSONA   2

댄서·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공동 대표, 리아킴

Sep 2, 2024

K팝 퍼포먼스의 성공에서 리아킴의 지분은 상당하다. 스트리트댄스와 코레오그래피를 아우르며 자유롭게 장르를 오가는 그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 댄서의 파워풀한 실력을 알린 장본인이자, 국내 댄스 신에 변화를 이끄는 체인지메이커다.

좋아하는 분야를 일로 삼은 삶은 어떤가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행복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와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커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일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고요. 함께 살고 있는 보더콜리 종 반려견 이호와 릴리가 있는데, 하루에 써야 할 에너지 총량을 다 채워주지 못하면 소파를 뜯거나 벽지를 긁는 등 말썽을 일으켜요.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바로 보더콜리구나’ 싶어요. 저 역시 하루에 써야 할 에너지를 충분히 소모하지 않은 날엔 달밤에 체조라도 해야 푹 잘 수 있거든요.(웃음) 특별히 시간을 내어 쉬지 않아도 힘들어 하거나 지치지 않는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휴가를 간 게 5년 전인데, 올해 역시 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죠.

삶에 만족감을 더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세상 일에는 그게 무엇이든 다 어려움이 있잖아요. 쉽지 않은 상황의 연속일지라도, 스스로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슬럼프를 겪기도 하고, 춤이 일로 느껴져서 지친 적도 있죠. 지금은 그런 순간들을 다 지나온 것 같아요. 문득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것은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대할 수 있게 됐어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이하 원밀리언)의 수장인 동시에 춤과 관련된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원밀리언을 오픈해 공동 대표를 맡고 있어요. 원밀리언은 댄스 아카데미이자 매니지먼트와 프로덕션 팀을 갖춘, 댄스 문화를 알리는 콘텐츠 회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춤추는 사람이 100만 명쯤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현재 전속 댄서만 23명, 함께 일하는 외부 댄서도 100여 명이죠. 창작 안무인 코레오그래피 시장이 활성화되고, K팝 퍼포먼스와 K댄스 특유의 군무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게 되면서 외국인 수강생이 70% 이상을 차지해요. 안무 제작과 댄스 아카데미 운영 외에도 내부 프로덕션 팀과 함께 안무 영상과 광고, 홍보 영상 등을 기획해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고요. 이외에도 글로벌 아티스트를 선발하는 미국 기반 연예 기획사 타이탄 콘텐츠의 최고 퍼포먼스 책임자(CPO), 한국안무저작권협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방송과 유튜브, 여러 회사를 오가며 일하는데 모두 춤과 관련된 일이죠.

연예 기획사처럼 매니지먼트 팀을 운영한다는 점이 신선해요.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체계적 시스템을 통해 댄서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싶은 바람이 컸어요. 과거 기획사에 레슨을 가면 반말은 기본이고, 안무비나 레슨비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관행처럼 여겨지던 악습의 고리를 끊고 싶었어요. 업계 최초로 소속 댄서와 전속 계약서를 작성하고, 안무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그에 맞는 댄서를 섭외해 스케줄을 관리해줘요. 댄서들이 춤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안무저작권협회장을 맡은 것도 같은 이유일까요?

K팝의 성공에 있어 댄스 퍼포먼스의 비중은 음악만큼이나 커요. 많은 분들이 이에 동의하고, 댄서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죠.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를 기점으로 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수준이 높아졌고, 댄서들의 활동 영역과 영향력에도 힘이 실렸어요. 대중 문화의 한 장르로 인식되는데도 오래된 관행들로 인해 댄스 산업이 확장하지 못했고, 댄서들 역시 불합리한 처우를 감내해야 했어요. 안무 제작, 방송 출연에 앞서 최소한의 보호 장치인 계약서를 쓰는 문화조차 아직 정착되지 않았죠. 안무도 음악처럼 창작의 권리를 인정 받고,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4월 동료 댄서들과 한국안무저작권협회를 출범하며 회장직을 맡게 됐어요. 댄스 신을 획기적으로 바꿔보겠다는 대단한 각오는 없습니다. 단지 구시대적인 관행들을 없애고 정리하는 일에 힘을 보태는 거죠. 협회라는 안전망 안에서 댄서들이 공정하게, 동등한 위치에서 일할 수 있길 바라요.

“지금 당장 무대를 떠난다고 해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해봤고, 이제는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도 보여 줄 필요 없이 집에서 조용히 혼자, 내멋대로 움직이며 춤을 추고 싶어요. 이상한 막춤을 출 때가 정말 즐겁거든요.”

다른 댄스 크루와 차별화된 원밀리언만의 스타일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프로페셔널한 동시에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친절함을 갖춘 팀이요. 원밀리언하면 ‘커머셜하다’는 인식이 많은데 저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죠. 대중에게 사랑받는 안무를 통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왔으니까요. 원밀리언이 대중적인 방향을 지향할수록 스트리트 댄서들 사이에서 저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어요. 대중적이라고 해서 저를 비롯해 원밀리언 댄서들이 쌓아온 역사나 예술성,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댄서들에게 완벽한 기량과 함께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춰야 한다고 말해요. 대중적인 스타일에 관심을 두고 자유롭게 표현하되 춤을 추고 싶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쉽게 기본기를 설명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 주길 바라죠.

아카데미의 특성상 초보 수강생들을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요, 어떤 마음이 드나요?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완벽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노련한 댄서들의 춤은 저에게 분석의 대상이긴 한데, ‘진짜 잘한다’라고 인정하지만 큰 매력을 느끼진 못하죠. 오히려 자극을 받는 건 초보자들을 볼 때예요. 어설프지만 자연스럽고 풋풋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감정이랄까요. 처음 춤을 배우는 분들은 표정부터 달라요. 한 동작만 익혔는데도 너무 신이나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 제가 다 행복해지죠. 길에서 막춤을 추는 어르신들이나, 서울숲에 수 백명이 모여 깔깔거리며 체조를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상황이 저에게 좋은 자극이 돼요.

스스로 일의 성패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물인지가 가장 중요해요. 객관화된 시각으로 제 춤을 바라봤을 때 완성도가 높고 멋지다면 성공한 거죠. 함께 일하는 파트너와 대중들의 평가도 신경은 쓰지만, 성패의 기준에서 타인의 평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프로패셔널한 댄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오랫동안 아티스트로 활동하다 보면 약간의 우월감이 생기기도 해요. 대중은 이해 못한다는 생각에 빠져 나만의 깊은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단절하는 경우도 종종 봐왔죠. 쉽게 ‘아티스트병’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 스스로 사람들을 밀어내게 돼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아티스트병’에 걸리면 답이 없어요. 스스로 제어하고 점검해야 할 부분이죠.

원밀리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600만 명 이상이에요. 유튜브가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갖기 훨씬 전인 2016년에 다이아 버튼을 받았다는 점도 굉장히 놀라워요.

댄스 영상 콘텐츠 제작 팀 ‘야크필름스 YAKflims’의 제안으로 팝핀 춤을 추는 영상을 촬영하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유튜브에 관심이 없던 때인데, 주변에서 조회수가 엄청나다며 연락이 와 확인해보니 20만 명이 제 영상을 본 거예요. 제 안무와 춤을 보여줄 새로운 무대가 생긴 거죠. 그 일을 계기로 유튜브의 진가를 빨리 알아챘어요. 팝핀이나 락킹을 추는 여성 댄서가 많지 않아서인지 업로드하는 영상 모두 조회수가 높았죠. 직접 촬영한 안무 영상을 꾸준히 올리며 원밀리언의 홍보 수단으로 유튜브를 적극 활용했고요. 최근엔 춤을 매개로 게스트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 ‘리아리티쇼’를 시작했어요. 춤과 관련된 에피소드, 가수와 댄서의 접점 등에 대해 편하고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100명의 댄서가 한 무대에 섰던 <스우파 2>의 메가크루 미션은 아티스트 리아킴의 역량을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다방면의 감각이 필요한 작업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호기심이 정말 많아요. 집요한 면도 있고, 에너제틱하다 보니 무언가에 꽂히면 바로 배우고, 몰입해서 관찰하곤 하죠. 궁금한 건 직접 부딪혀서 알아내는 편이고요. 아티스트들을 보면 보통 감성적인 분들이 많은데, 저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스타일이에요. 무언가에 이끌리기 보단, 주제를 정해 분석하는 편이죠. 퍼포먼스를 구상할 때도 대중이 새롭게 느낄만한 주제를 찾은 뒤에 시각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대칭과 비대칭의 변화를 활용해 그래픽적 느낌을 더하려고 해요. 감수성이나 감각에 의존하기 보단 오히려 AI에 가깝죠. 그렇다 보니 예술가,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도 해요. 아름다운 공간과 패션, 소소하지만 예쁜 물건들, 자연, 사람들과의 만남 등 새로움을 만들기 위한 동력은 주로 주변에서 발견하는 편이죠.

더이상 무대에 서지 않는 자신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미련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필요한 곳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무대를 떠난다고 해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해봤고, 이제는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도 보여 줄 필요 없이 집에서 조용히 혼자, 내멋대로 움직이며 춤을 추고 싶어요. 이상한 막춤을 출 때가 정말 즐겁거든요.

에디터 이은경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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