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A   PERSONA   39

본투스탠드아웃 대표, 임호준

Jun 19, 2025

임호준은 향수 브랜드 본투스탠드아웃의 창립자이자 디렉터다. 향수가 지금처럼 일상적이지 않던 시절에 일찍이 향이 주는 미묘한 차이를 경험한 그는 외국계 투자회사에서 뷰티 애널리스트로 활약하며 산업의 흐름을 꿰뚫었다. 본투스탠드아웃은 그가 오랜 시간 축적한 통찰과 취향을 향으로 엮어낸 결과다. 직설적인 네이밍, 바닥부터 천장까지 붉게 물든 쇼룸, 그 모든 요소에는 익숙한 방식에 기대지 않겠다는 그의 분명한 태도가 담겨 있다. 임호준의 취향을 담은 향 역시 조용히 스며들기보다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유와 반항을 택하라고 속삭인다.

오랫동안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수집해왔다고요. 그의 작업관과 본투스탠드아웃의 세계관이 맞닿는 지점이 있을까요?

‘슈퍼플랫 플라워 Superflat Flower’ 이전의 작업부터 꾸준히 모아왔어요. 처음엔 이미지에 끌렸는데, 보면 볼수록 그 안에 숨은 날카로움이 보이더라고요. 무라카미 다카시 Takashi Murakami의 작품은 귀엽고 장난스러운 그림 뒤에 소비주의에 대한 풍자와 유머가 촘촘히 깔려 있어요.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태도도 인상 깊고요. 본투스탠드아웃 Borntostandout 역시 반항적이되 과하지 않고, 진지하지만 가볍게 표현하는 방식을 지향합니다. 제가 그리는 브랜드의 세계관엔 무라카미에 대한 오랜 애정이 자연스레 배어 있는 듯해요.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한 삼청점에서도 느꼈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미술관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생각이 정리되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해외 출장을 가면 꼭 현대미술관을 찾습니다. 최근엔 뮌헨의 피나코텍 데어 모데르네 Pinakothek der Moderne에서 열린 <별난: 자유의 미학(ECCENTRIC: ÄSTHETIK DER FREIHEIT)> 전시가 인상 깊었어요. 세계적인 작가 50인의 작품이 모인 자리였는데, 그중 폴 맥카시 Paul McCarthy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재해석한 조각이 특히 기억에 남더라고요. 파리에 머무를 땐 루브르 박물관, 프티 팔레 Petit Palais,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도 자주 들립니다.

언젠가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는 정말 많죠. 개인적으로는 위트와 해학을 품은 작업에 끌리는데, 그런 점에서 영국 기반의 아티스트 데이비 슈리글리 David Shrigley를 특히 좋아해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특유의 영국식 유머로 풀어내는 방식이 매력적이죠. 자유롭고 유쾌하지만, 그 안에 은근한 날이 숨어 있는 점이 저희 브랜드와도 결이 맞고요.

“반항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품는 마음이잖아요. 저희는 그 작은 마음에 향으로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향수는 기억이나 감정을 연결하는 섬세한 매개체인데요. 그런 향을 통해 ‘반항’이라는 태도를 말하고자 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반항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품는 마음이잖아요. 상사의 말에 고개를 젓고 싶을 때나 평소와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싶은 순간, 사회가 정해놓은 궤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까지, 저희는 그 작은 마음에 향으로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예컨대 ‘DGAF(Don’t Give A Fuck)’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고요. 세상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향이라는 언어로 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제품명이 대부분 직설적인 것도 그 때문이에요. 감정을 감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꺼내보이고 싶었거든요.

직관적인 이름만큼이나 향도 확실한 개성을 갖고 있어요. 이 또한 본투스탠드아웃만의 작은 반항일까요?

유행하는 향, 모두가 좋아할 만한 향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냥 제 취향이에요.(웃음) 향은 취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영역이라 타인의 의견을 반영하다 보면 금세 개성을 잃거든요.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요. 한 사람의 취향을 중심에 두고 만든 향이기에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그만큼 깊이 공감해주는 팬들과 더 단단하게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가장 크게 피어오르는 반항심은 무엇인가요?

K뷰티의 성공 공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흐름에 작게나마 균열을 내고 싶어요. 지난 5년간 K뷰티가 빠르게 성장한 만큼 거품도 많거든요. 파리나 뉴욕 같은 도시에서의 팝업은 늘고 있지만, 대부분은 브랜드보다 앰플이나 쿠션처럼 특정 제품만을 앞세운 단발적 행사로 끝나버리곤 하죠. 더 아쉬운 건 브랜드에서도 스스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인플루언서 바이럴에만 의존할 뿐, 소비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고민하지 않아요. 이런 방식은 단기적인 성장을 이끌어 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브랜드의 수명을 단축시키죠. 그런 점에서 소비자에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2022년 본투스탠드아웃을 론칭한 이후 세계관에 유독 집착한 이유이죠.

메일 도메인이 ‘하우스바이림’이더군요. 본투스탠드아웃에 이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걸까요?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냥 ‘임가네’예요.(웃음) 향수를 만들기 전에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법인을 먼저 만들었거든요. 본투스탠드아웃은 그 첫 번째 시도죠. 향을 시작점 삼아 앞으로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 갤러리를 열 수도 있고, 랄프 로렌 Ralph Lauren의 랄프스 커피 Ralph's Coffee처럼 브랜드의 결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도 흥미롭겠죠.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선은 향수 브랜드로서 입지를 더 단단히 다지고 싶습니다. 본투스탠드아웃의 세계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모였을 때 그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챕터가 열릴 거라 믿어요.

바쁜 일과 속에서도 오롯이 '나'를 지키기 위한 리추얼이 있다면요?

향수 말고는 거의 소비를 하지 않아요. 다만 아주 가끔 제 취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을 사죠. 지금 착용하고 있는 시계도 그런 물건이에요. 1980년대에 출시된 ‘머스트 드 카르티에 Must de Cartier’ 시리즈의 초기 탱크 모델인데, 블랙 컬러의 미니멀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경매를 통해 구입했어요. 브랜드의 역사와 저만의 취향이 겹쳐지는 순간이랄까요. 나에게 꼭 맞는 물건을 조용히 곁에 두는 일이 요즘의 저를 지탱해주는 방식입니다.

‘잘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성과나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내 방식대로 해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라면, 저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정하고 있으니까요.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내 안에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그걸 지켜가려 해요. 요즘엔 그게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에디터 정신오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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