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신념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A   PERSONA   11

모빌스 그룹 대표·모베러웍스 디렉터·무비랜드 극장주, 모춘

Oct 24, 2024

디자이너 모춘이 극장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고 싶은 걸 남 눈치 보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촌스럽고 조잡하다고 폄하하던 과거의 무협영화가 누군가에게는 풍부한 문화적 영감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의 통념에 따라 좋다고 믿던 것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됐다.

모빌스 그룹 홈페이지 내 멤버 소개를 보니 모춘 님의 직책이 대표나 디렉터가 아닌 유튜버로 되어 있더군요.

업데이트를 안 해서 그런 거 같아요. (웃음) 일 시작하고 처음 만든 명함에 직책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유튜버라고 적었거든요. 직장을 그만두고 제 이름을 내건 유튜브 채널인 ‘모춘 TV’를 운영할 때만 해도 브랜드를 운영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보자는 일념이 더 강했죠. 그래서인지 대표나 디렉터 같은 호칭이 쑥스럽더라고요. 제가 과연 그럴만한 사람인가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한 회사의 대표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부끄러워한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나 직원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요즘은 브랜드 모베러웍스와 극장 ‘무비랜드’를 운영하는 모빌스 그룹의 대표이자 극장주로 저를 소개하고 있어요.

프로젝트가 브랜드로서 자생할 수 있겠다는 확신은 언제 받았나요?

그냥 자연스러웠어요. 물론 프로젝트가 잘 되고 있다는 걸 체감했던 적은 많았죠. 모베러웍스라는 이름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선보인 상품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브랜드와 협업해 예상치 못한 큰돈을 벌기도 했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흐름에 등 떠밀린 것 같기도 해요. 일이 하나둘 느니까 자연스레 일손이 더 필요해졌고 그렇게 팀을 구성하게 된 거죠. 그래서 모빌스 그룹이란 법인을 세웠어요. 팀원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모빌스 그룹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떤 회사를 상상했나요?

회사 소속일 때는 아이디어이든, 작업이든 항상 상급자로부터 확인을 받아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정말 스트레스였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상급자의 확인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에 알맞은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스스로 아마추어 같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함께 일하는 조직원이나 유관부서의 성향에 따라 결과의 좋고 나쁨이 극명히 갈렸으니까요. 그래서 모빌스 그룹을 시작할 때, 상급자의 확인을 위해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 결이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회사를 꿈꿨어요. 그래야만 재미있게 일하고 좋은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모춘 TV 콘텐츠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모든 걸 직접 만들고 그것을 선보이는 모빌스 그룹의 태도는 펑크 록 밴드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생각에서 발현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컬트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것도 같아요.

저는 늘 펑크 밴드 음악을 좋아했어요. 반항적이고 주류에 속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고집을 끝까지 고수하는 그들의 태도를 닮고 싶어 했죠. 모춘 TV를 시작할 때도 어느 정도는 펑크 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배고픈 펑크 록 밴드처럼 신념만을 밀어붙이며 살고 싶진 않았어요. 성공한 펑크 록 밴드가 되고 싶었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제가 이전에 다닌 회사 라인 Line에서의 경험이 저를 좀 더 상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도 같아요. 그래서 모빌스 그룹에 컬트 cult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는 표현은 저에게는 굉장한 칭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순적인 표현 같기도 해요.

특별하게 닮고 싶은 펑크 뮤지션의 태도가 있나요?

최근엔 미스피츠 The MisFits의 태도에 흠뻑 취해 있어요. 펑크 음악 하면 떠오르는 용광로처럼 감정을 직접적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콘셉트를 밴드에 입히고, 어딘가 각 잡힌 음악을 선사하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를 오가는 것 같아요.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늘 직원들에게 “취하지 말자”라고 얘기해요. 펑크 음악을 좋아하고, 컬트 정신을 내세운다고 해도 아슬아슬하게 끝까지 가버리면 안 되잖아요. 저와 직원들 모두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가도 안되고요. 그 경계에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회사의 운영 원칙이에요.

“타인이 원하는 것 대신 제가 좋아하는 걸 하자고 다짐했고, 줄곧 그렇게 밀어붙였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어떤 걸 만들어서 보여줄까?’보다 ‘어떻게 하면 같이 재미있게 놀까?’를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요. 그 해답이 극장인 이유가 있나요?

모베러웍스를 통해서 계속해서 일에 관한 메시지를 발신했는데요. 극장이라는 곳이 결국에 메시지, 즉 이야기를 판매하는 플랫폼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일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옮긴다면 극장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론 브랜드 화형식을 하고 싶었어요. 이상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모베러웍스로 발신한 모든 메시지를 불태워버리고 싶었거든요. 저희가 자유롭게 구상한 스타일마저도 공식화되고, 어느 순간부터 클라이언트를 위한 작업이 많아지다 보니 자가당착에 빠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저희 작업이 멋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벌어 놓은 거 한번 대차게 말아먹더라도 몽땅 긁어서 제대로 한방 보여주자, 그 이후엔 망해도 어쩔 수 없다, 뭐 그런 마음으로 극장을 개업한 거예요.

모춘 님이 의도한 화형식은 브랜드의 초심을 이어 나가고 싶은 의지였던 거네요.

제 마음을 저보다 정확히 간파하셨네요. 계속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발신하고, 참신한 언어로 트렌드를 따르거나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에 좀 지쳤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저를 돌아보면 늘 날을 세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브랜드의 초심을 지키면서 지속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모베러웍스는 일에 관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회사인데, 언제까지 일에 관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메시지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거든요. 그렇다고 억지로 메시지를 만들다 보면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그 수가 뻔히 보이겠죠?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가 모이는 플랫폼인 극장을 해보자. 다양한 업계의 큐레이터가 선정한 영화 이야기를 하고, 그 영화를 통해서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나가자. 그런 생각을 했죠. 하던 일을 완전히 전복하지 않는 한 저희가 해온 일의 관성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뉴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사로잡은 모빌스 그룹이 레거시 미디어인 극장 사업을 선택한 데는 모춘 님만의 또 다른 스토리가 담겨 있을 것도 같아요.

제가 디자이너를 업으로 삼고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정제된 디자인’이 세련된 디자인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거든요. 저는 도저히 뭘 어떻게 해도 그런 디자인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다닐 때마다 의기소침해 있었어요. 그때 <대취협>이라는 무협 영화를 접했는데요, 1966년도에 제작했으니까 당연히 촌스럽잖아요? 영화 줄거리도 특출 난 게 없고 특수효과도 조잡했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 감독이 자기 취향을 끝까지 고수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후에 무협영화 관련해 ‘디깅 digging’을 엄청나게 했어요. 그러다 미국 힙합 그룹인 우탱 클랜 Wu-Tang Clan의 네이밍이 ‘무당파’를 영어로 바꾼 표현이란 걸 알게 됐죠. 멤버들 모두 무협영화의 광적인 팬이었고요. 계속 파고들다 보니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감독까지 이어졌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무협영화를 전부 버무려서 만든 영화가 <킬빌>인데, 지금은 영화광들이 열광하는 작품이잖아요. 반드시 정제된 무언가를 해야만 세련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느꼈어요. 조잡하고 촌스러워도 그 재료를 어떻게 버무리는가에 따라 세계적인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운 거죠. 그때부터 타인이 원하는 것 대신 제가 좋아하는 걸 하자고 다짐했고, 줄곧 그렇게 밀어붙였어요.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어떤 공간을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나요?

한 개인의 경험들이 버무려진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경험을 추억할 수 있는 것만큼 편안한 안식처도 없잖아요. 제가 수작업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데요. 손으로 매만져 완성한 시각물이나 공간 집기에는 저만의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무비랜드 공간에 수작업 요소가 많은 이유이기도 해요.

무비랜드에도 모춘님의 경험이 담겨있겠네요.

도서관의 감성과 오키나와의 이미지를 합치고 싶었어요. 제가 대학생 때 도서관을 자주 갔어요. 술 마시느라 수업을 못 들어간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나름의 묘책이었죠. 항상 사람이 제일 없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지금도 종종 떠올라요. 창을 통과한 한 줄기 빛을 보거나 오래된 책 냄새를 맡다 보면 공공장소임에도 나만의 아지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거든요. 오키나와는 일본의 섬이잖아요. 그런데 미군이 오랫동안 주둔해서 그런지 미국 문화가 절묘하게 섞여 있어요. 재래시장에 가면 죄다 스팸을 특산품으로 팔더라고요. 좀 기이한데 그게 또 흥미로워요. 저기 보이는 세라믹 컵이 오키나와에서 구매한 기념품인데, 기모노를 입은 악사가 스팸 통에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저는 이 그림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무비랜드에서 반드시 선보이고 싶은 영화가 있나요?

무비랜드는 매번 큐레이터를 선정해 그들의 영화를 선보이는 방식인데요. 그 첫 번째 큐레이터가 저였어요. 당시에 큐레이팅한 영화가 <대부>, <백 투 더 퓨처>, <개들의 섬>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취협>이거든요. 시대나 장르, 감독, 배우 등 기준을 내세우고 선정한 영화가 하나도 없어요.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를 소개했죠. 그게 무비랜드의 의도이기도 하고요. 누군가의 취향이 담긴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요.

큐레이터를 선정하는 것이 영화를 선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겠네요.

정확히는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영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나무위키나 주변 사람들의 감상평을 일일이 찾아보는 스타일이거든요. 분명 본 영화인데 주변부의 이야기를 찾아가다 보면 새로운 영화를 알게 된 것 같더라고요. 말장난이긴 한데, 저희가 무비랜드를 영화관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극장이라고 하거든요. 이유는 영화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우선이기 때문이에요. 때론 뮤지션의 공연도 열고, 브랜드 행사도 하죠. 그리고 저희가 선보인 콘텐츠를 토대로 굿즈도 만들어 팔고 있고요. 그런 지점 때문에 영화관으로서 색깔이 흐려질 수도 있긴 한데, 뭐 다 취할 수 없잖아요?

에디터 서재우
포토그래퍼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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