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기울이는 태도가
일상을 충만하게 만듭니다

A   PERSONA   64

희녹 대표, 박소희

Jan 29, 2026

편백나무의 생명력을 일상 용품에 담는 브랜드 희녹의 중심에는 뷰티 업계에서 19년간 커리어를 쌓아온 베테랑 박소희가 있다. 그는 매달 신제품이 쏟아지는 시장에 몸담아 왔지만, 자신의 브랜드에서 만큼은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는 데 평균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인다. 이러한 사이클은 빠르게 확장하기보다 탄탄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박소희에게 알맞은 속도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전하고 싶다는 그는 제품을 소비의 대상이 아닌, 일상을 완성하는 도구라 믿으며 삶을 더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 매 순간을 정성스럽게 살핀다.

희녹은 제품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뷰티, 리빙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선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를 론칭할 때는 카테고리를 먼저 정하지만, 저는 ‘라이프 에티켓 Life Etiquette’이라는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이 개념을 떠올리게 된 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어요. 팬데믹으로 아끼는 사람들과 보내던 일상적 순간들이 사라졌고, 공간적으로 여러 제약이 생겼잖아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더욱 조심하게 되었죠. 저는 그 변화가 단순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꼈어요. 희녹은 이런 '존중의 태도'를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돕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일상에서의 존중을 고려해서일까요. 희녹은 늘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에 주목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능 역시 중요하지만,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의 즐거움’이 일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어요. 그래서 개발 단계부터 제품이 어떤 상황에서 쓰일지를 집요하게 고민하죠. 세제 또한 그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에요. 팬데믹으로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이전보다 자주 세탁하게 됐잖아요. 위생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변화였지만, 기성 세제는 대부분 향이 강해서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더군요. 그렇다고 무향 제품을 사용하자니 빨래의 즐거움이 사라지고요. 고민 끝에 개발한 것이 '더 디터전트 The Detergent'입니다. 이 세제는 세탁기에서 막 꺼냈을 때는 집 안에 싱그러운 편백 향이 퍼지지만, 건조가 끝난 뒤에는 향이 남지 않아요.

개인적인 경험이 제품 개발의 출발점이 된 셈이네요.

초반에는 혼자 제품을 개발하다 보니 제 개인적인 필요가 많이 반영됐죠. 제품 개발팀이 생긴 지금은 제 개인적 경험보다 팀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대부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웃음)

다음 제품에는 어떤 고민과 경험이 담길지 궁금합니다.

2년 전부터 반려동물을 위한 제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반려동물 역시 사람만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라이프 에티켓’이라는 시선을 반려동물로까지 확장해보고자 했습니다. 제품 제형 개발은 거의 마무리되었어요. 지금은 전문 기관에서 임상 시험을 비롯한 엄격한 검증 과정을 진행 중이에요. 반려견 용품이라도 같은 생활 공간에서 사용하는 만큼 아이를 포함한 모두에게 안전하고 자극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죠.

“소소한 과정을 보내며 얻는 즐거움과 기다림, 그리고 모든 일을 끝마쳤을 때 오는 뿌듯함이야말로 일상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이 빠진 삶은 금세 무료해질 겁니다.”

뷰티 기업의 상품 개발자로 일하던 시절, 스스로 ‘인생 노트’라 부르던 문서가 있었다고요. 비밀번호를 잊어 결국 열지 못했다는 일화가 인상적이었는데, 인생 노트에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기억하나요?

맞아요, 제가 약간 허당기가 있거든요.(웃음) ‘인생 노트’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어요. 다이어트나 저축처럼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세우는 계획들이 적혀 있죠. 희녹 역시 그중 하나였고요. 40대가 되면 사업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쭉 적어두었어요. 실제로는 계획보다 1년 늦은 41살에 시작하게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계획이 실현된 셈이죠.

50대를 위한 계획도 있나요?

사업적인 목표와는 별개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어요. 50대가 되기 전에 만화방을 여는 거예요. 만화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슬램덩크>를 보며 우정이 무엇인지 배웠고, <풀하우스>를 읽으며 남녀 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어요. <미스터 초밥왕>을 통해서는 ‘계란 초밥이 맛있는 곳이 진짜 맛집’이라는 나름의 기준도 생겼고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화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상상할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고 싶어요. 첫사랑의 기분이 궁금할 때, 혹은 삶이 막막할 때 책을 꺼내보는 공간이랄까요. 영상도 물론 좋지만, 저는 사람들이 종이책으로 읽었으면 해요. 종이의 물성과 책장을 넘기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글 읽는 행위를 좋아하거든요. 가능하다면 비초에 Vitsoe 선반에서 만화책을 고르고, 편안한 가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네요.

글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인지 희녹은 유독 글의 힘이 느껴지는 캠페인이 많습니다. 기프트 세트에 편지를 동봉하는 ‘편지 캠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죠.

글에는 마음을 전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편지 캠페인은 주로 명절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시기에 진행합니다. 선물을 보낼 때 물건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더 중요하게 전해져야 하는 건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잖아요. 모든 사람의 편지를 대신 전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캠페인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편지는 직접 쓰기보다는, 매번 정한 주제와 잘 맞는 분에게 글을 의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케터 김규림의 편지 ‘정성스러운 삶’이 기억에 남아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표님의 태도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요.

‘정성스러운 삶’은 2024년 설에 보낸 편지예요. 규림이 올린 블로그 내용이 좋아서 그에게 글을 의뢰했어요. “빨래 건조대에서 바로 옷을 꺼내 입는 삶은 지양하고 싶다”는 한 인터뷰 문장에 공감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이었죠.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말리고,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가 다시 꺼내 입는 과정에서의 수고 하나하나가 결국 나를 돌보는 방식이라는 내용인데요. 정성을 들여 하루를 대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정말 공감됐어요. 누군가는 번거롭다고 느낄 수 있지만, 소소한 과정을 보내며 얻는 즐거움과 기다림, 그리고 모든 일을 끝마쳤을 때 오는 뿌듯함이야말로 일상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이 빠진 삶은 금세 무료해질 겁니다.

일상의 작은 과정들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다만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그런 여유를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일과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한다면 분명 기쁘겠지만, 그러다 보면 삶이 일에 치우치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속도보다는 오래도록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제가 사는 서촌에는 아주 오래된 중국집이 하나 있는데, 영업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여름에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1시도 되기 전에 영업을 마치고, 폭염이 이어지는 시기에는 한 달씩 문을 닫기도 하죠. 서촌에는 이런 식당이나 카페가 꽤 많아요. 업종도 운영 방식도 제각각이지만, 모두 오랫동안 변함없는 품질을 유지하고 있어요. 저는 그 비결이 각자 자기 방식의 ‘균형’을 지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일과 일상의 균형을 지키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나요?

아이가 있다 보니 근무 시간을 비교적 명확하게 정해두고 일하는 편이에요. 희녹에는 저와 비슷한 워킹맘들이 많아서, 다들 그런 방식으로 각자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과 일상을 완전히 분리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일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일이죠. 예를 들어 집은 개인적인 공간이라 인터뷰나 촬영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종종 일본에서 온 파트너나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곤 하죠. 누군가는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시간의 경계는 분명히 두되,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저만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에디터 정신오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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