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거듭해 내 삶의
주도권을 찾아갑니다

A   PERSONA   51

퍼블리 창업자·비즈니스 칼럼니스트,
박소령

Oct 23, 2025

지식 플랫폼 스타트업 ‘퍼블리 PUBLY’를 창업한 박소령은 10년 동안 수없이 도전했고, 배우고, 부딪히며 회사를 키워왔다. 10년이 지난 뒤, 그는 스스로 회사를 매각하고 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10년 간의 창업기를 담은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펴냈다. 박소령은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쓰는 행위를 통해, 일의 끝에서 치열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실패를 재정의한 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는 실패란 삶의 기본값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나요?

안식년은 거창하고 정확히는 백수인데요 (웃음). 요즘은 제가 낸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알리는 일에 완전히 빠져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서점 랭킹부터 확인하고, 독자 후기를 샅샅이 읽어요. 인스타그램에선 ‘#실패를통과하는일’ 해시태그로 검색해 ‘좋아요’를 누르고요. 책을 출판한 북스톤 팀과 마케팅 논의도 자주 해요. 북토크도 열심히 합니다. 요즘은 책의 유행 주기가 짧아져서 출간 직후 적극 홍보가 관건이라고 하더군요.

10년 만에 가진 긴 쉼일 텐데 더 바쁜 것 같네요. 쉬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나요? 

맞아요. 상반기엔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썼고, 하반기엔 그 책을 알린 거죠. 책의 ‘초고’는 창업한 퍼블리를 매각하고 대표 자리를 내려놓은 직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썼어요.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이니까 검열할 이유가 없었죠. 그렇게 쓴 글이 아프고 힘든 마음을 낫게 했어요. 하지만 책은 달랐습니다. 책은 초고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여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꺼내보일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왔나요?

10년 동안 도움받은 분들께 초고를 보여줬어요. ‘조언자 그룹’이라 부르던 분들이죠. 사회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격려도 받았지만,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결국 두 사람의 말이 저를 움직였어요. 김강석 크래프톤 대표님이 해준 “퍼블리로 10년 동안 사업을 할 수 있던 건 사회로부터 많은 걸 받았기 때문이고, 사회에 빚을 갚는 행동이 매듭을 짓는 좋은 방법 같다”고 하셨죠. 북스톤 출판사의 김은경 대표님도 “정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 중요하고, 북스톤 브랜드의 격을 올릴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해줬고요.

조심했던 부분이나 마음에 걸리는 점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책의 10개 챕터 중 이해관계자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챕터는 하나일 거예요. 특히 해고(lay-off)와 회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을 담은 두 파트가 마음이 무거웠죠. 팀원들과 주주라는 두 중요한 이해관계자를 깊이 생각하고 쓸 수밖에 없었어요. 출판사도 원고를 세심히 봤고, 외부 피드백도 많이 받았어요.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소설로 각색하라는 조언도 들었죠. 하지만 저는 책을 읽는 누군가는 불편하고 화가 나고,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때의 박소령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를 이해해 준다면 충분하다고요. 또한 실패가 실패로만 남지 않고, 이 기록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좋겠어요. 이해관계자분들도 그런 더 큰 맥락에서 책이 가진 의미를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실패 덩어리예요. 그러나 실패는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이고, 그저 통과하는 일이 곧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는 일이 아닐까요.”

뼈아픈 회고의 날들이었을 텐데요. 오랜 시간 동안 실패를 들여다본 뒤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나요?

지금의 제 마음 속에는 두 단어가 자리해요. 주도권과 통제요. 글을 쓰면서 제가 주도권을 강하게 원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놀랍게도 회사 운영을 할 때 주도권을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할지 늘 고민하고 괴로워했죠. 제 회사이니까 전권을 가지고 더 과감히 나아갔어야 했는데, 어리석고 부족했습니다. 창업으로 어떤 성취나 목표를 이루고자 한 게 아니라,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서 창업을 ‘수단’으로 삼았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통제는요? 책 말미에 나오는, 회사의 끝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정리하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 떠오릅니다.

우아한 표현으로 주도권이지만, 결국 내 선택의 결정권을 잃지 않고 싶다는 건 통제 범위 밖의 일이 벌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요. 통제하겠다는 건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모든 걸 끝낼 결심도 제 통제 범위 밖에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한 뒤였으니까요. 책을 읽은 누군가가 저를 보고 ‘통제광’ 같다는 말을 해줬는데, 맞아요. 제 인생과 일의 과정에 있어서는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걸 알게 됐죠.

타협 없이 지키는 원칙이 있나요? 책에 ‘일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던데요.

책에도 등장하는, 친한 친구인 소희에게 “다시 사업을 한다면 회사의 핵심 가치 두 가지는 정했어. 둘 다 ‘근’으로 시작하는 단어인데, 근면성실과 근검절약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웃음) 좀 구닥다리처럼 보여도, 반짝하고 빛나는 것보다는 오래가는 가치가 좋아요. 그런 면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Haruki Murakami를 좋아해요. 근면성실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죠. 작가가 지금 76세인데 꾸준히 달리고 성실하게 다작해요. 창작을 쉴 땐 번역 작업을 하고요. 그가 젊을 때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보였는데,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변화된 모습이 큰 울림을 주고요.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대화를 하다 보니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의를 고민하는 태도가 느껴져요.

신기하네요. 혼자서 오래 생각했지만 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 적은 처음이에요. 인생 책으로 꼽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에서 관절암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안식년 내내 하루 17시간씩 몰두했던 조지프 미라이 Joseph Muaary 박사의 이야기가 나와요. 너무 멋진 거예요. 나 역시 안식년 동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목표로 책을 쓰겠다고 고백했어요.이 책을 제게 선물해준 친구로부터 “앞으로 너는 항상 공적 대의나 가치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라는 가슴 뭉클한 답장이 돌아왔죠.

책 외에 요즘 몰입하는 일은 없나요?

바둑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몇 달 전 러닝을 하다가 발목을 다쳐서 두 달 동안 꼼짝 없이 방에 갇혀 책만 썼거든요. 학원에 간 첫날부터 깜짝 놀랐어요. 바둑 선생님이 “돌을 두기 전 반드시 두 가지를 선행해야 한다. 내 돌의 위치를 먼저 확인한 뒤 상대의 돌 위치를 확인하고 난 다음 돌을 둬야 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사업에서 얻은 교훈이 그대로 적용되더라고요. 예컨대 포기해야 할 전투는 빠르게 나와야 하고, 나무와 숲을 번갈아 보면서 전투를 벌여야 할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도 일과 인생의 은유 같아요. 강력 추천합니다. (웃음)

일에서도 삶에서도 언제나 ‘끝’을 생각한다고요.

늘 끝을 상정하니까 죽음에 대한 상상도 자주 해요. 결국 우리는 모두 죽어요. 장례식에 대한 고민도 자주 하고요. 다만, 엄숙한 한국의 장례식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아요. 미국이나 영국 장례식은 가볍고 유쾌하잖아요. 친구 소희에게 제 장례식 준비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해 뒀어요. 플레이리스트도 만들고, 친구들이 앞에 나와서 저와의 추억을 한 마디씩 말하고요. 조문객들에게는 맛있는 커피와 빵을 대접하는 거예요. 이것마저 또 프로젝트처럼 접근하나요? (웃음)

그래서일까요. 실패에도 의연하고 단단해 보여요. 책을 펴내고 난 지금은 실패를 어떻 게 정의하나요?

출판사로부터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바로 좋다고 했어요. 실패는 실패이니까요. 어떤 수식도 변명도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작 제목을 지은 김은경 대표님은 ‘통과’에 방점이 더 찍혀있다고 했죠. 제가 불교 신자여서 그런지, 원래 ‘인생은 고통’으로 봐요. 고통 안에 실패도 포함돼 있으니 늘 당연하다고 여겼던 거죠. 매일 매일이 실패 덩어리예요. 그러나 실패는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이고, 그저 통과하는 일이 곧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는 일이 아닐까요. 모건 하우절 Morgan Housel의 책 <불변의 법칙>은 “인간은 기댓값과 결괏값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행복을 크게 느낀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통제 가능한 기댓값을 낮추는 게, 행복을 위한 주체적인 선택 같아요. 우리는 매일 실패하고, 앞으로도 실패를 거듭할 테니까요.

에디터 최선우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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