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크리에이티브의
재고를 꺼내 쓰고 있습니다

A   PERSONA   1

패션 디렉터·스타일리스트·매거진 ‘벨보이’ 편집장, 박태일

Sep 2, 2024

박태일은 패션 업계에서 여러 범주를 넘나들며 자신의 창의성을 발산하는 비주얼 디렉터다. 삶과 성공을 바라보는 그만의 관점은 스스로를 지속해서 새로운 일의 줄기로 뻗어 나가게 한다.

좋아하는 분야를 일로 삼은 삶은 어떤가요?

추천합니다. 저는 삶 속에서 크리에이티브의 재고를 계속 쌓아 하나 둘 꺼내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결과물들을 내놓으려면 그 재고가 넉넉히 쌓여 있어야 해요. 옷은 제가 입고 싶다는 개인적 이유에서라도 계속 궁금하고, 새로운 걸 찾게 돼요. 자연스럽게 인풋이 끊이지 않는 거죠. 자산을 쌓고 꺼내 쓰는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다는 것 자체에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의 퀄리티도 높아지게 되고요.

속도가 빠른 패션 업계에 염증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일에 저의 인풋을 모조리 쏟아내느라, 정작 제가 입고 다니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던 시절도 있었어요. 거의 1년 넘게 검은 티에 검은 바지만 입던 시기였죠. 그럼에도 제가 저만의 관점으로 새로운 것들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더군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시대를 지나 예전의 것들을 꺼내 흥미 있게 바라보는 흐름을 눈 여겨보고 있어요. 코어를 확실히 잡고 있는 게 중요하지, 새 것 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성공과 실패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건강하게 일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타이밍이 좋아 성공한 일에 자신감을 가져도 좋고, 운이 따라주지 않아 실패한 일에 좌절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의 1인 크리에이터 시대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감사함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껴요. 제가 남성지 <GQ>에서 에디터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시대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때도 매체가 아닌 나만의 콘텐츠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컸죠. 글, 화보, 비주얼 같은 면면이 나를 그대로 대변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요. 그 시절 제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 지금과 같은 시대를 만나 덕을 보고 있어요. 1인 크리에이터는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을 잘하는 것과 그 점을 잘 알리고 홍보하는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성향 탓에 전자에 힘을 더 쏟고 있어요. 소셜라이징은 부담스러움과 의무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야예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아무거나 올리기’를 다짐한 게시물을 올렸던 거군요.

일종의 직업병인데요. 인스타그램도 하나의 매체라고 봤을 때, 제 팔로워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들이 어떤 걸 궁금해할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를 팔로우하시는 분들은 제 사진이나 비주얼, 글의 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겠지만, 인스타그램이라는 매체 특성 상 일상적이고 더 개인적인 모습을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다짐을 한 거였고요. 하지만 여전히 글을 짧게, 허투루 쓰는 것은 성향상 맞지 않네요.(웃음) 감사하게도 ‘스토리’ 기능이 있어, 이를 편하게 이용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진들을 일종의 여행 사진집처럼 많게는 몇 십 장씩 올리곤 하죠.

일에 접근할 때 직관적인 편인가요? 아니면 분석적인 편인가요?

패션이라는 분야가 예술적인 것 같지만 굉장히 상업적이에요. 감각적으로 보여줘야 하지만 아무리 멋있는 옷이라도 입는 사람의 체형이나 분위기와 맞지 않아 소화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분석적인 부분을 간과하면 힘들어지죠. 결국에는 양쪽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좋은 비주얼을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측면이 있다면, 브랜드에 대한 고려입니다. 브랜드의 기원은 어디서부터인지, 브랜드들 사이 공통점이 있는지, 각자의 문화를 가진 브랜드가 섞였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등이요. 복식사에서 오랜 기간 존재해 온 문화 키워드를 분석하고, 제가 다루는 브랜드와 결이 일치할 때 희열을 느끼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당신만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저 자신에게 계속 자문하는 편이에요. 물질적인 성공만이 성공이라고 보지 않는 것은 확실하고요. 제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해요. 성공의 비율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적으로 이롭겠죠.(웃음) 성공을 지향하는 건 중요하지만, 성패가 오롯이 저의 역량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황, 운, 타이밍, 동료 등 환경이 중요하죠. 모든 성공과 실패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건강하게 일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타이밍이 좋아 성공한 일에 자신감을 가져도 좋고, 운이 따라주지 않아 실패한 일에 좌절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브랜드를 글로 소개하며, 다양한 수식어들을 고안해 왔을 텐데요. 스스로를 하나의 수식어로 표현하면 어떤 걸 고르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표현을 빌려도 될까요? 드레익스 Drake’s라는 브랜드는 스스로를 ‘Relaxed Elegance’라고 표현해요. 저 역시 <벨보이 Bellboy>라는 이름을 지을 때, 아주 고전적인 직업이지만 ‘보이 boy’라는 단어가 주는 귀엽고 편한 느낌을 차용한 거였거든요. 클래식한 코어를 가졌지만 캐주얼하고 편하게 풀어내는 감각을 좋아하고, 표현하려 합니다.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 준 본인만의 관점이 궁금합니다.

저는 일과 삶 속에서 이상적인 균형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해 온 것 같아요. 균형이라는 것이 하나의 답이 있는 개념인 것 같지만, 무엇에 무게를 두는가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울 한쪽에 거대한 무언가를 두고 싶다면 그 반대쪽엔 자잘한 것들을 아주 많이 올려야 균형을 맞출 수 있죠. 흔들리는 저울 양쪽에 다른 무게와 모양의 추를 올리며 그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저만의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삶에 동력을 주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가족과 동료입니다. 사실 가족이 있어 신경 쓸 일도 많고, 포기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늘 도전하는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되기도 해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에 도달하고 싶어지고요. 아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좋은 선배로 남고 싶어요. 제가 책임지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삶을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에디터 한동은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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