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부딪히고, 그 다음에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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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트레이딩 본부장, 성명수

Oct 30, 2025

성명수는 유통 전문 기업 무신사 트레이딩의 본부장으로, 노아, 032c, 마린세르, 언더커버 등 정체성이 뚜렷한 해외 브랜드들의 국내 진출을 이끌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날을 세우는 그는 주말이면 강릉으로 향한다. 각진 구형 BMW를 몰고,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한 삶을 즐긴다. 평일엔 서울, 주말엔 강릉. 트렌드 한가운데서도 고요를 잃지 않는 그의 일상은, 쉼과 움직임이 공존하는 리듬 위에 놓여 있다. 그가 자신만의 속도를 지켜낼 수 있는 이유다.

무신사 트레이딩의 본부장이 강릉에 산다는 사실을 들으면 누구나 놀랄 거예요.

강릉은 제 고향이에요. 할아버지가 어업에 종사했는데, 일을 마치면 늘 저를 배에 태우고 영진항을 한 바퀴 돌곤 했어요. 그때 바라본 풍경, 느꼈던 색과 촉감, 냄새 같은 것들이 지금의 제 미적 감각을 만든 뿌리예요. 물론 강릉에 계속 살진 않았어요.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3년 전까지 줄곧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았으니까요.

강릉으로 돌아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땐 저도 서울을 동경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서울에 있었거든요. 특히 서울에서 외삼촌들이 지금으로 치면 ‘브랜드 디렉터’ 일을 하고 있었고, 덕분에 일찍 패션에 눈을 뜨기도 했죠. 하지만 바이어로 일하며 해외 브랜드들과 교류하다 보니, 오히려 로컬의 가치가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지금은 ‘메이드 인 뉴욕’이 아닌 ‘메이드 인 브루클린’처럼 지역성과 정체성이 중요한 시대이니까요. 저는 제가 자란 도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강릉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내와 상의 끝에 강릉으로 집을 옮겼죠.

선택할 때 망설임이 없는 편인가요?

요즘 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그냥 하자”예요. 망설이다가 놓치기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람을 만나서 뭐 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래도 한번 만나보자’라는 마음으로 먼저 움직여요. 일단 부딪쳐보고, 그다음에 판단을 내리는 편이죠.

“쇼룸에서 본 한 재킷의 안감이 유명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받은 거였는데, 사수가 그걸 알아보고 감탄했죠. 그때 느꼈어요. ‘아, 진짜 바이어는 브랜드의 맥락과 가치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고요.”

2022년,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자회사, 무신사 트레이딩으로 이직했어요. 하이엔드 셀렉트숍 분더샵과 케이스스터디에서 12년간 바이어로 일했으니,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도 있었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 브랜드와 유통의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걸 느꼈어요. 피지컬 마켓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패션 유통 기업들이 흔들리는 사이, 온라인 마켓을 기반으로 성장한 무신사가 국내 패션 업계의 새로운 ‘키 플레이어’로 부상했죠. 저를 설명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자면 ‘호기심’이에요. 이전까지는 백화점을 배경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바이어로 일했기에 오프라인에서 브랜드를 확장하고 매출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온라인 마켓에서 브랜드를 어떻게 확장하고, 고객과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전혀 알지 못했죠. 그런 호기심이 저를 무신사 트레이딩으로 이끌었어요.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경험은 기존 오프라인 마켓과 무엇이 달랐나요?

내부 회의 중에 웹사이트 사용자가 어디에서 스크롤을 멈추거나 이탈하는지를 분석한 리포트를 본 적이 있어요. 텍스트와 제품 정보가 잘 어우러진 에디토리얼 구간에서 체류 시간이 길다면, 그 브랜드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이미지 중심 구간에서 오래 머무른다면, 시각적 요소가 브랜드의 핵심이라는 걸 알 수 있고요. 이렇게 사용자의 반응을 기반으로 브랜드별 맞춤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데이터 기반 인사이트는 오프라인에서는 얻기 힘든, 온라인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무신사 트레이딩에 입사해 가장 먼저 국내에 들여온 브랜드가 ‘노아’였죠?

“옷장에서 단 하나만 남긴다면 노아 Noah를 고를 것”이라고 말할 만큼 개인적으로 애정이 깊은 브랜드예요. 셀렉트숍 비이커 Beaker에서 국내 첫 팝업이 열렸을 때만 해도, 노아를 들여온 곳이 비이커를 전개하는 삼성물산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노아가 새로운 유통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연락을 시도했어요.

노아와의 첫 미팅은 어땠나요?

원래는 뉴욕 본사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심이 아닌, 롱아일랜드 햄튼 Hamptons으로 향했어요. 요트가 드나드는 고급 휴양지인데, 11월 말이라 대부분 매장이 문을 닫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중이었죠. 다행히 노아 햄튼 매장은 열려 있었고, 직원에게 이것저것 묻고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사 마케팅 담당자더라고요. 숙소로 돌아온 뒤,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세일즈 디렉터에게서 “파운더도 함께 미팅에 참석하겠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햄튼 매장을 방문한 게 꽤 인상적이었다고 했죠. 미팅 당일엔 노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싶어 초창기 아이템을 입고 갔고, 파운더도 반가워했어요. 케이스스터디 Casestudy 바이어 시절 보냈던 제안 메일과 강릉에서의 생활 사진을 보여주며 이 브랜드를 꼭 유통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했죠. 놀랍게도 다음 날 또 보자는 연락이 왔고, 거의 그 자리에서 대부분의 조건을 구두로 정리하고, 파트너십이 성사됐습니다.

해외 디자이너와 손잡고 S.O.S라는 브랜드를 시작한 것도 인상 깊었어요.

S.O.S(Sound of Sunrise)는 일본 패션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 Mihara Yasuhiro와 협업해 론칭한 스포츠웨어 브랜드예요. 그가 한국에 올 때면 자주 함께 시흥의 인공 서핑장 ‘웨이브 파크’에 가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대화를 나누곤 하죠. 그중 인상 깊었던 건 요즘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예전엔 스타일만 봐도 두 나라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뷰티와 패션 트렌드가 거의 동일하게 흐르고 있거든요. 온라인 플랫폼이 보편화되면서, 두 나라를 하나의 마켓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러워졌죠. 무신사가 양국 모두에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점도 큰 장점이고요. 이런 흐름 속에서 S.O.S를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론칭하게 되었고, 그 시작을 패션의 중심인 파리 패션위크에서 알렸어요. 현재는 피지컬 매장 없이 드롭 형태로 전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매장도 열 계획이에요.

해외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국내에 소개하고,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결국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해 해외 브랜드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지닌 바이어들이 팀에 포진해 있고, 그런 인적 자원이 모여 무신사 트레이딩을 업계에서 주목받는 집단으로 만들었죠.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강점도 크게 작용하고요. 무신사는 약 2천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어요.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이 있는 젊은 세대 사용자 비중이 높다 보니, 브랜드 입장에서도 온라인 마케팅과 유통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을 가진다고 봅니다.

해외 출장이 잦은 바이어로서 장시간 비행을 즐기는 본인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비행 전엔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를 미리 리스트업해요. 평소엔 바빠서 챙겨보기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비행기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에 몰입해 콘텐츠를 즐겨요. 최근에는 셰프들의 이야기를 담은 <더 베어 The Bear>를 재미있게 봤어요. 캐릭터 하나하나의 서사가 잘 살아 있어 강력히 추천해요.

바쁜 일상에서 자신만의 쉼을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가만히 있는 걸 잘 못해요. 호기심이 많아서 하루, 이틀 정도는 쉴 수 있어도, 결국은 뭔가 새로운 걸 찾아 나서게 되죠. 그래서 저에게 ‘쉼’이란 오히려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장르를 시도하는 경험에서 와요. 머리를 식히는 동시에 시야도 넓어지거든요.

바이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바이어에게 필요한 자질도 호기심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옷을 좋아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저 두루 좋아하는 수준보다는 한 분야에 깊이 있는 애정을 가진 사람이 더 매력적이에요. 바이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 드리스 반 노튼 Dries Van Noten 쇼룸에 갔는데, 제 사수는 미술사를 전공한 분이었어요. 쇼룸에서 본 한 재킷의 안감이 유명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받은 거였는데, 사수가 그걸 알아보고 감탄했죠. 그때 느꼈어요. ‘아, 진짜 바이어는 브랜드의 맥락과 가치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고요.

에디터 서재우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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