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차와 대비를 더해 의외성을 디자인합니다

A   PERSONA   21

스튜디오 신신 그래픽 디자이너, 신동혁·신해옥

Jan 9, 2025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신신은 직관적이고 도전적인가 하면, 비움에 가까운 서정성과 가벼움으로 예측 불가능한 다양성이 곧 스타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10년 차 부부 겸 동업자인 이들은 함께 축적한 아이디어와 때마다의 관심사를 결합해 신선하고 때론 비범하게 유연한 디자인을 도모한다.

스튜디오 신신이 벌써 10년이나 됐네요. 과거와 현재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해옥) 그동안 적극적으로 소비된 신신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고, 독특한 느낌이 강했어요. 그때의 작업을 보면 ‘목소리가 엄청 컸다’고 말하게 돼요. 우리 생각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의욕이 앞서 덜어내지 못했던 몇몇 것들은 ‘이불킥’의 주범이 되기도 하고요. 요즘은 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디자인을 의뢰하는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동기화하는데, 그럴수록 과하지 않은 표현 방식에 집중하게 돼요. 잘 다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작업 전반에 이런 태도가 더해지고 있어요.
(동혁) 업력이 쌓일수록 우리의 직관을 믿고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달라져야 하죠. 20대 때 개발한 룩이나 스타일을 40대에도 유지하고 있다면, 의도라기보단 직관에 따라 작업하는 방식의 궤적이 표출됐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찍어 놓은 몇 개의 점들은 하나의 궤적으로 읽히지 않아요. 이런 예측 불가능한 다양성을 ‘신신 스타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럴수록 더 용기를 내 일하다 보니 매체나 프로젝트의 경계가 확장된 거죠.

다양한 미디어만큼이나 그래픽 디자인 영역이 확장된 요즘,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동혁) 가장 많이 작업하는 건 여전히 책이에요. 온라인 홍보 이미지나 웹사이트도 디자인하는데 공통점은 이미지로 수렴한다는 것이죠. 나이 불문 모두 24시간 카메라와 붙어 지내며 어떤 행위에 대한 증거들을 사진으로 기록하잖아요. 많은 이미지가 유통되는 지금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기회이기도 해요. 인스타그램의 피드나 유튜브의 썸네일, 시위대의 깃발 속 이미지, 특정 메시지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사진 등 과거 포스터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들이 너무 다양하죠.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이미지를 노출하고 퍼트릴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예요. 21세기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이미지의 소비와 유통 방식, 전달 매체에 변화를 주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활동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해옥) 그래픽 디자이너는 2차 창작자에 가까워요. 의뢰인의 최초 의도에 따라 우리의 역량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결정될 때가 많죠. 그들이 보는 신신의 이미지가 작업 스타일이 될 수 있는거요. 재기발랄한 것부터 진중하고 클래식한 느낌까지 신신의 표현 범위에 폭은 넓어요. 디자인에만 충실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가진 속성을 발현하고 일의 재미를 찾고자 역할에 선을 긋기보단 책과 전시, 퍼포먼스, 워크숍 등으로 확장해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2차 창작자인 동시에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점이 독특해요.

(해옥) 함께 일하는 분들과의 신뢰가 두터워지면서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갖기도 하는데, 자율성과 책임감이 커지는 만큼 더 많이 연구해 창작의 범위를 넓히고 있어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보의 층위가 복잡할수록 디자인은 물론 표현하는 매개체 선택에도 도움이 되죠.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 이후의 우리는 미약하게라도 다른 사람이 돼 있어요. 납품하면 끝이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너무 소모적으로 만들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일할 방법을 모색하며 ‘우리의 주도권’을 찾곤 하죠. 주도권이란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명조체와 다른 서체를 혼합해 연출하거나, 인쇄 종이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등 남들이 봤을 땐 엄청 사소한 것들이에요. 작은 아이디어라도 우리 의도대로 결과물을 만들면 이번엔 이걸로 됐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 그게 곧 재미있는 일이 되는 거죠.

동업자 겸 동료로서 각자의 성향은 어떤가요?

(동혁) 해옥은 농번기에 태어난 ‘3월 소띠’여서 그런지 정말 쉬지 않고 일해요. 성실하게 뭔가를 계속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주마 같은 사람이죠. 저는 십이 간지 설화에서 소머리 위에 앉아 있다가 경주에서 1등을 차지하는 쥐띠예요. 이쪽 밭을 갈아야 할 것 같다고 훈수를 두곤 하는데, 여러 방향으로 흩뿌려진 해옥의 아이디어를 하나로 엮어 일의 방향과 관점처럼 큰 그림을 봐야 할 때 의견을 많이 내요. 우린 시소 같은 관계예요. 무언가를 계획하는 편은 아닌데, 그럼에도 일을 할 때 정해진 대로 쭉 가고 싶은 타입이 저라면, 해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연결해요. 어떤 현상과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묘한 재주가 있어요.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공과 사의 경계 없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도 클 것 같은데 어떤가요?

(동혁) 누군가 제 인스타그램을 보고 해옥의 팬 계정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셀카는 극도로 싫어하지만, 매일 해옥 사진을 찍어 자주 업로드해요. 어딘가에 이 친구 사진을 저장해두고 계속 보는 게 재미있어요. 우린 성인으로서 제대로된 자의식이 구축되기 전인 20대 초반에 만났어요. 부모님 못지않게 저를 키웠다고 할 만큼 해옥이 많은 것들을 알려줬고요. 좀 오그라드는 얘긴데 저에게 사랑이란, 내 존재의 일부를 지우고 상대로 채우는 것이더라고요. 해옥은 저에게 그런 존재예요. 과거의 제 가치관과 생각이 어땠는지 잘 판단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받았어요. 부부로 잘 살려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잘 맞아야 하더라고요. 저흰 싫어하는 게 정말 똑같아요.

집이 곧 회사인데, 별도의 작업실이 없다는 점이 놀라워요.

(동혁) 둘 다 집에서 일하다 보니 출퇴근이 없어요. 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 컴퓨터 앞에 최대한 덜 앉아 있으려고 노력하죠. 우리에게 컴퓨터는 입구와 출구 역할만 할 뿐이에요. 해옥의 작업 공간도 거실 한 편의 작은 책상이 전부고, 전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일하죠.
(해옥) 둘이 얘길 많이 해요. 차로 이동할 때도 집에 돌아가면 뭐부터 할지 계획하고, 일이 더 수월하게 진행될 방법을 고민하죠. 포스터 디자인을 해야 하는 날엔 레이아웃과 사용할 서체까지 꽤 구체적으로 정하며 의견을 나누고요. 1차로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나면 확실히 작업 시간이 단축돼요. 불필요한 업무와 에너지 소모를 확실히 줄이고 있어요.

신신의 디자인 동력은 일상의 대화 속에 있는 거네요?

(해옥) 학부생 때부터 함께 작업하면서 쌓인 기억이 정말 많은데 우리는 그걸 ‘창고’라고 불러요. 여행 중 들른 찻집, 거리의 간판시트 같이 창고에 묵혀둔 별거 아닌 장면을 떠올리며 디자인 재료로 쓰죠. 아이디어 대부분이 추상적일 때가 많은데 대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정리가 된다는 점이 좋아요.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한데, 파편화된 생각들을 글로 옮기며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거나, 이미지에 장황한 캡션을 붙여 보기도 해요. 스스로 길게 따져 묻다 보면 의도가 선명해지고, 머릿속에 확실히 저장돼 제 것이 되더라고요. 또 동혁이 ‘그거 별론데?’라고 답할 것 같을 땐 ‘내가 저 사람만큼은 설득해야지’ 다짐하며 좀 더 논리적이고 정교하게 포인트를 짚어 의견을 전달하기도 해요.
(동혁) 우리에게 일은 중력 같은 거예요. 수시로 엄청난 대화를 나눠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잘 안 보는 편인데, 학생들과 수업할 때 제발 핀터레스트 좀 그만 보라고 말해요. 눈이 길들면 결과물 또한 모두 같아져요. 디자인 감각은 근육과 같아요. 아차 하는 순간 퇴화하죠. 서로 쓴 소리도 하고 자극을 주며 감각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요.

“21세기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이미지의 소비와 유통 방식, 전달 매체에 변화를 주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활동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일상의 재료를 디자인 언어로 풀어내는 신신만의 방식이 있다면요?

(동혁) 우리에게 중요한 건 표현 방식보단 작동법이에요. 고전과 엉망진창인 싸구려 양식을 섞기도 하고, 을지로 노포와 대로변의 글라스 타워를 혼합하는 거죠. 그런 대비와 낙차를 디자인 언어로 풀어내는 방법을 구상하는데, 골조 두 개를 세운 뒤 다양한 것들을 매칭해 보며 우리만의 질서를 찾아요. 서로 다른 느낌의 서체를 한 페이지에 담거나, 저질과 고급 용지를 섞어 쓰기도 하고, 일부러 저해상 사진을 넣기도 하죠. 합이 괜찮거나 아이디어가 적절하다고 느끼면 일단 해 봐요. 작업 중에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덧붙이고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해옥)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디자인이요. 얼마 전 작업한 윤향로 작가의 전시 <미래> 포스터의 경우 대부분의 면적을 비운 채로 흰 지면 위에 간결한 텍스트와 실버 물감이 튄 것 같은 약간의 장치만 더했어요. 전시의 주요 키워드인 시간성과 천장에 작품을 설치해 텅 빈 공간감을 강조한 작가의 작품 의도를 잘 담고 싶었죠. 점점 덜어내는 데 집중해 디자인을 거의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어요. 유연한 디자인을 완성하려면 각 매체가 놓이는 방식과 순서 역시 고민할 부분이에요. 전시 공간이라면 대표 이미지인 포스터를 본 뒤에 전시장 안에서 작품과 함께 리플릿을 읽고, 마지막으로 도록을 접하잖아요. 하나의 세트로 인식돼 모두 같은 온도로 디자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동어 반복이자 각 매체 특성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하나의 궤를 이루면서 각각의 역할과 결을 고려해 디자인에 강약을 주고, 주제가 오염되지 않게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죠.

일본 북디자이너 기쿠치 노부요시 책의 번역서를 준비하고 있다고요?

(해옥) 기쿠치 노부요시 Nobuyoshi Kikuchi는 수작업으로 평생 1만 5000권에 달하는 책 표지를 제작한 일본 출판계에서 존경받는 북 디자이너예요. 우리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책 종이 가위>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일본 서점에서 이분의 에세이를 발견했는데 읽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순수하게 우리가 읽고 싶은 마음에 사비로 판권을 구입하고 변역해 올 상반기 출간할 예정이죠. 디자인이 아닌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과 식당, 꽃 같은 것들이 책 내용이에요. 꾸준한 태도로 살아가며 얻은 그의 진정한 취향이 무엇일지 궁금했어요.

출판업이 쇠퇴하는 시점에 디자이너가 된 셈인데요, 그럼에도 책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이유가 있다면요?

(동혁) 산업의 쇠퇴기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기성세대가 걱정해야 할 문제이지, 새롭게 시장에 유입된 젊은 층이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출판 산업이 예전 같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층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 소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독자 유형이 바뀌면서, 기존의 디자인 문법에 길들여지지 않은 새로운 소비층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지금은 디자이너가 여러 형식을 실험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기존 형식에 따르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다면, 가장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때인거죠.

에디터 이은경
포토그래퍼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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