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나만의 고유함을 찾아야 합니다

A   PERSONA   25

디자이너·오이뮤 대표, 신소현

Mar 6, 2025

올해로 10년 차를 맞이한 브랜드 오이뮤는 한국의 고유성이 담긴 문화를 동시대적 감각과 접목해 옛것의 수명을 늘리는 일의 가치를 좇는다. 오이뮤 대표 신소현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삶을 지탱하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며, 일과 삶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카드 디자인실을 2년 3개월만에 퇴사하고 미국으로 홀연히 떠났어요.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나요?

제가 찾고 싶었던 것은 정체성이었던 것 같아요. 디자인을 좋아하고 전공으로 삼았으니 첫발은 뗐는데, 무엇을 위해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경험을 위해 퇴직금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 거예요. 더 넓은 땅에 몸을 던져보고 싶었죠.

무엇을 경험했나요?

학생 비자로 뉴욕에 가서 어학원과 디자인 스쿨의 수업을 듣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도 일하며 1년 정도 보냈어요. 로컬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소비와 생산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도 이렇게 지역성과 고유성에 기반한 일들이 벌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지금 오이뮤의 실마리를 발견한 거예요.

정체성을 찾겠다는 목표는 이뤘나요?

네. 저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적인 고유성을 잃지 않도록 되새겨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당시엔 어렴풋했지만, 이런 일들을 쌓고 쌓아오다 보니,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까지 들어요.(웃음)

브랜드 오이뮤의 핵심은 전통에 있죠. 대표님은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많은 분들이 오이뮤를 전통을 되살리는 브랜드로 인식해 주고 계시지만, 거창하게 전통을 내세우고 싶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의 전통이란 사람들이 일상을 살며 쌓아온 생활양식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복, 족자, 민화와 같은 옛것부터 지금도 길거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전단지까지 모두 전통에 속한다고 봐요. 보다 부드럽고, 넓게 전통을 바라보려 하죠. 저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깊은 유대를 쌓으며 자랐는데, 할머니께서 해주신 옛날이야기를 듣고, 옛날 물건들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일상에서도 정겹고 귀한 오래된 것을 발견하는 일을 즐겨요.

“과거로 새겨질 모든 순간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건져 올려서 제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선보이고 싶어요.”

“우리는 귀여운 마음으로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잇는 오이뮤”라는 브랜드 소개가 인상적이에요. 특히 귀여운 마음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귀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소중해서 애틋하고, 아깝고, 귀여운 그런 마음이요. 저는 일상 가까이에 있는 토속적인 것들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무언가를 귀하게 바라보는 귀여운 마음을 잃지 말자는 의미를 담아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어요.

오이뮤의 첫 프로젝트로 성냥을 소개했고,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천여 곳이 넘던 성냥 공장이 다 사라지고 마지막 한 군데만 남았다는 다큐멘터리를 접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근현대 산업의 상징과도 같았던 물건이 시대가 지나며 사라지는 게 아쉬웠죠.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의 수명을 연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국에 오자마자 성냥 공장에 찾아갔어요. 그렇게 처음 제작한 성냥을 협업 파트너 민음사에서 4천 개나 대량 발주했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일의 가치만 좇던 초보 대표인 제게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전환점을 운좋게도 빠르게 맞이했던 것 같아요.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설득하고, 일을 오래 지속시킬 힘은 시장성을 만드는 데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일을 좀 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 후부터 일의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나가며, 가치가 비즈니스로 실현될 수 있는 형태를 갖춰간 것 같아요.

선보일 아이템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해요.

성냥, 향, 지우개 등 오이뮤 초기에는 제조업을 제일 눈여겨봤어요.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제조업도 함께 빠르게 번영했지만, 지금은 제조 기반 일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어요. 수요의 형태가 달라지며 꽃을 피웠다가 지고 있는 제조업을 조명하고 싶었죠. 실제로 사양 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기여를 했고, 공장 사장님들도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전해주세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함과 자부심은 얻었지만 자체 제작이 아니다 보니 저희가 그 분야의 주도권을 가져가기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콘텐츠 기반의 프로젝트로 시선을 옮기게 된 것 같아요.더블클릭하여 내용 수정. 단락 구분(P 태그)은 Enter로, 줄 바꿈(BR 태그)은 Shift + Enter 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더블클릭하여 내용 수정. 단락 구분(P 태그)은 Enter로, 줄 바꿈(BR 태그)은 Shift + Enter 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RASER 453>, <색이름 352>, <산 239>, <계절의 효능> 등 출판물을 선보이기 시작한 이유군요.

출판을 해야겠다기 보다는 ‘콘텐츠 기반의 일을 시작해 보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여러 정보를 집약할 수 있는 콘텐츠와 가장 잘 맞는 물성이 책이었고요. 출판사들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며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고객층이 많이 유입되기도 했거든요. 특히 <색이름 352>는 제일 마음이 가는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코발트블루는 토청색으로, 크림색은 연근색으로 옮기는 등 우리 말로 색 이름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혀진 한국적 감각을 상기시킬 수 있었죠. 오이뮤의 시선과 가치를 보여준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일 외에 개인적 삶의 시간은 어떻게 채우나요?

아직도 ‘워라밸’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워라밸을 지켜야 행복한 삶인 것처럼요. 처음엔 저도 개인적인 시간을 구분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둘을 경계 짓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아요. 앞서 일을 통해 삶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쉬는 시간에도 일에서 더 알고 싶었던 분야를 공부하곤 해요. 고서를 읽으며 영감을 찾는다던지요.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더 행복해요.

지난 10년간 대표님을 지탱한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팀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우리는 지금 역사의 일부를 써 내려가고 있다”예요. 과거의 가치와 오랜 이야기들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제안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런 오이뮤의 가치와 족적이 미래에는 더 선명하게 새겨질 것이라고 믿어요. 오늘 이 시간도 내일이 되면 과거가 되잖아요. 과거로 새겨질 모든 순간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건져 올려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선보이고 싶어요.

에디터 한동은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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