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의 깊이를 쌓아야 합니다

A   PERSONA   31

호라이즌 유니온 대표, 송호성

Apr 17, 2025

송호성은 타이포그래퍼로 출발해 브랜딩과 UI/UX, 프로덕트 디자인으로 분야를 확장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왔다. 네이버, 런드리고, 무신사와 같은 다양한 회사를 거친 덕분에 IT, 커머스 등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감을 즐기며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결과물을 만든다. 지난해 20년의 긴 조직 경험을 마무리하고 호라이즌 유니온을 설립한 그는 브랜딩과 디지털 프로덕트 전반을 아우르는 컨설팅과 실행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클라이언트들과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고 새로운 관계의 비즈니스를 실험하고 있다.

디자인을 중심으로 다방면의 분야로 커리어를 옮겨왔습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해 빠른 흥미를 느끼는 사람인 만큼 익숙해지면 쉽게 지루함을 느끼거든요. 이는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과 조직, 상황이 지루해지는 걸 경계했죠. 매번 안주하기보다 도전을 선택한 것 같아요.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 배울 점을 찾을 때면 일하는 즐거움이 크게 다가오거든요. 제 경우 여러 도메인을 경험하면서 학습 민첩성을 터득했고 유능감도 얻었어요. 저는 한 우물을 깊게 파기 보다는 여러 우물을 다양하게 파는 스페셜 제너럴리스트를 꿈꿉니다.

IT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유니콘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을 경험하면서 깨달은 ‘내게 맞는 회사’는 무엇인가요?

수직적인 구조나 전통적인 기업 문화는 잘 안 맞더라고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정비되지 않은 초기 단계도 마냥 편하진 않았어요. 회사의 도메인보다는 저 자신을 기준 삼아 이직해 왔어요. 커리어는 일종의 제 서사이잖아요. 정확한 이유와 의도로 포트폴리오를 설계할 때도 있지만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십 파트너와의 관계를 살필 때도 있었죠.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연결되고 싶은 회사를 골랐던 순간들도 기억에 남아요.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기 전 어떤 마음가짐을 갖나요?

이직이란 게 결혼과 비슷한 듯해요. 긴장 때문에 결혼 전 날은 잠도 잘 안 오고, 아무리 상대에 대해 깊이 이해했다고 해도 사실 겪어봐야 알잖아요? (웃음) 일단 이직하는 회사가 저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와 업무 과제 등을 진짜 즐기면서 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요. 실제로 조직에 합류하면 3~6개월은 팀원과 힘을 합쳐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세팅하는 데 집중해요. 팀 내 좋은 인력, 능력을 어떻게 내재화할 수 있을지, 혹은 외부 자원은 어떻게 할지를 파악하며 조직 강화를 하는 거예요. 그를 통해 매출이나 사업 확장, 투자 등 한 해의 로드맵을 정교하게 짜서 조직원들과 목표의 방향을 맞추는 거죠. 매우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지만, 한번 정리하면 그 이후로는 팀원과 자연스럽게 합을 맞춰 일하게 돼요

“성패를 나누기보다 각자 정확하고 뾰족하며 자신의 스토리에 맞게 깊이감을 갖고 고민하길 바라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 보나요?

팀원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요. 조직의 규모가 크든 작든, 회사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해야 해요. 그 다음은 협업이죠. 커리어 초기에 서체나 로고를 만들 때는 개인플레이가 가능했어요. 스토리텔링이나 표현 능력이 좋은 디자이너가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팀 전체의 성과가 되기도 했죠. 그런데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들면서부터는 사업 개발, 기획, 디자인 등 직군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목소리로 이끌어야 하더라고요. 협업을 잘할 수 있는 환경, 방식을 고민했죠. 하달식으로 업무를 이끌 수도 있겠지만 팀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면 단순한 지시보다 스스로 내재화하게 하는 방식이 더 강력하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어요.

지난해 직장에서 독립해 브랜딩 스튜디오 호라이즌 유니온을 시작했습니다.

21년간 9개 회사를 거쳐 왔더라고요. 돌이켜 보니 긴 시간 일을 하면서 쉰 적이 없더군요. 저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질 요량으로 퇴사했는데 의도치 않게 몇몇 회사에서 일을 의뢰했고 좋은 기회가 이어졌어요. 조직 규모나 비용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되 높은 성과를 원하는 기업이 저 같은 캐릭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여러 회사와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을 맺고 디렉터가 되어서 내부의 목표 설정, 코칭, 퀄리티 컨트롤 등 조직 전반을 살펴요. 외부인이자 디렉터기에 제약은 많지만, 다양한 회사와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그간 여러 도메인을 거쳐오며 경험했던 것들을 융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도 좋고요. 또 저와 비슷한 디렉터, 전문가들과 연대해 일을 확장할 수 있어 즐거워요.

커리어 전반에 서체, UI & UX, 고객 경험 설계 등 늘 끝단에 소비자가 있는 일을 했죠. 결과물을 완성, 배포하기까지 늘 염두에 두는 생각이 있다면요?

사용자의 반응이 좋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성공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반짝 반응은 있을 수 있지만, 그 경험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라고 생각해요.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지속 가능하려면 ‘경험’뿐 아니라 ‘성과’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커머스 업계에 있으면서 고객 경험과 매출, 비즈니스 임팩트의 균형이 좋을 때 사업을 유지할 수 있고 그게 결국 사용자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더 뼈저리게 배웠어요. 사용자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건, 기업이 원하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되, 그것을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그래야만 훗날 더 좋은 제품이 나왔을 때 다시 구입할 수 있는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태도가 일할 때도 반영되나요?

그럼요. 커리어 초기엔 새로운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훈련했어요. 그런데 점점 경영진을 설득하는 일이 많아지고 조직 안에서 방향성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해지면서, 이제는 다른 차원의 노력을 하죠. 최근 선배의 추천으로 MBA를 시작했어요. 디자인 밖 비즈니스 전략, 재무, 인사 등 경영진 레벨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그들을 설득할 수 있잖아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회계, 통계, 리더십, 투자 등을 공부하는데 몸은 힘들지만 도움이 정말 많이 돼요. 새로운 감각,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죠.

대표님에게도 좋은 선배와 멘토가 있군요.

운 좋게도 좋은 선배가 주위에 많아요. 네이버 이해진 의장님, 비미디어컴퍼니 조수용 대표님, 네이버 랩스 송창현 대표님, 런드리고 조성우 대표님, 무신사 조만호 대표님 등 공통점은 다 창업자들이죠. 이분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공 분야와 무관하게 고객에게 집중하는 힘이 탁월하다는 거예요. ‘고객이 이걸 왜 써야 하는지’, ‘다음에 왜 또 쓰고 싶을지’를 골몰히 생각하죠. 그리고 그 질문을 자신과 구성원 모두에게 내재화해 결과물로 완성해 내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멘토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이러한 집요하고도 강한 질문의 힘을 배워요.

일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실패를 무의미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실패를 얼마나 쌓아봤느냐가 더 중요한 지표일 수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실패하죠. 다만 중요한 건, 그 실패가 나의 서사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예요. 성패를 나누기보다 각자 정확하고 뾰족하며 자신의 스토리에 맞게 깊이감을 갖고 고민하길 바라요. 그런 과정이 결국 ‘자기다움’을 만들어주는 거고요.

에디터 유승현
포토그래퍼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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