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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RSONA   36

플랏엠 디자이너, 선정현·조규엽

May 29, 2025

선정현과 조규엽은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플랏엠의 디자이너다. 2005년 설립한 플랏엠은 크고 작은 주거 공간과 작업실, 워크룸 프레스, 루밍, 메종 키티버니포니,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등의 공간 디자인 및 리뉴얼 작업을 맡으면서도, 2016년부터 주도적으로 ‘논픽션홈’이라는 설치 개방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논픽션홈은 특정 기간 자신들의 사무실을 개방하고 새로운 형태의 기물을 설치해 익숙한 공간에 낯섦을 부여하는 프로젝트로, 두 디자이너가 논픽션홈을 10년째 선보이는 이유는 개성 가득한 가구 설치만으로 공간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음을 내보이기 위함이다. 익숙한 공간에 개인의 취향을 불어넣는 일이야말로 플랏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플랏엠이 전개하는 공간과 닮은 인물은 어떤 모습일까요?

(정현) 저는 떠오르는 인물은 없는데요, 흰밥 같은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사용자의 개성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일까요?
(규엽) 보는 것만으로도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요. 사나 SANAA 건축 사무소를 이끌며 201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인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 Sejima Kazuyo나 프랑스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이스라엘인 안무가 엠마누엘 갓 Emanuel Gat이 떠오르네요.

세지마 카즈요와 엠마누엘 갓의 어떤 면모에 자극을 받나요?

(규엽) 일단 저는 처음 봤을 때 이유 없이 ‘진짜 독특하다’라고 느끼는 사람을 좋아해요. 엠마누엘 갓의 움직임은 무용이기보다는 일상의 동작처럼 다가와요. 그런데 그게 또 굉장히 낯설거든요. 알 듯 모를 듯한 춤사위가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고, 그 드라마를 위한 무대 연출과 의상, 음악도 완벽하죠. 세지마 카즈요의 경우는 분명 더 새롭고 뛰어난 건축을 할 수 있음에도 한결같은 건축을 선보여요. 모두가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살아남는 시대에서 자기만의 방법을 고수하는 우직함이 늘 존경스럽고, 그만의 독창적 시각을 선사하는 것 같아요.

공연이나 건축물을 보기 위해 여행 계획을 짜기도 하나요?

(규엽) 저희는 늘 엠마누엘 갓의 공연 일정에 맞춰서 여행 계획을 짜요.
(정현) 항상 의외의 난관에 봉착하죠. 엠마누엘 갓이 공연하는 도시에 국제 공항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땐 구글맵을 보고 대략 위치를 가늠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실제 거리는 가까워도, 막상 국가와 도시 간을 이동한다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지 깨닫게 돼요. 이동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그래도 꽤 낭만적인 여행 방법인데요?

(규엽)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으면 늘 여러 도시가 궁금하잖아요. 예전에 갔던 도시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엠마누엘 갓의 공연을 무작정 따라가자는 규칙을 정하면 도시를 선택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저희에겐 오히려 실용적인 여행 방법이에요.

의외의 장소를 발견하기도 하나요?

(정현) 그리스 아테네가 생각나요. 이상한 표현인데, 분명 유럽인데 방콕을 여행하는 것 같았어요. 굉장히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랄까요? 말로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도시에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규엽) 최근에는 젊은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이 아테네에 모인다고 해요. 저는 스케이트보드 볼 bowl 같은 기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스케이트보딩을 즐기는 라트락 스케이트 카페 Latraac skate cafe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정현) 한쪽에선 라이브 디제잉 공연도 즐길 수 있고, 거기 진짜 멋져요. 저희 둘 다 바다 수영을 좋아해서 원 없이 수영할 수 있었어요.
(규엽) 수영을 하다가 성게에 쏘여서 이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닌지 걱정했는데, 저희를 본 아테네 아저씨가 자기는 수만 번 쏘였는데, 아직 잘 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디자이너가 수익만을 원한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공사를 하겠죠. 저희가 생각하는 윤리의식이란 불필요한 시공을 하거나 과도한 장식을 통해 디자이너의 미의식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목적에 알맞은 합리적인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에요.”

두 분 모두 러닝을 즐깁니다. 최근엔 아웃도어 의류에서 사용하는 소재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에 반영하기도 하는데, 플랏엠은 어떤가요?

(정현) 기능성 옷의 구조나 소재를 통해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요. 제품의 봉합선에 방수 처리하는 심실링 seam sealing 작업이나, 인체 특징을 고려한 실루엣, 립스탑 Ripstop이나 고어텍스 Gore-tex® 같은 기능성 원단을 직접 경험해보면 정말 신세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희 작업 중에 가죽을 소재로 쓰는 게 있는데요, 이 소재를 가구가 아닌 벽지로 활용할 예정이에요. 원래는 신발을 만드는 고급 이탈리아 가죽인데, 이걸 건축 자재로 활용하는 기지를 발휘한 셈이죠. 사실 신발에 이 가죽을 사용하면 무늬나 색깔, 질감 등을 고려해 특정 부분만 잘라 사용할 텐데요, 저희는 신발 재료로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까지도 활용하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어요. 같은 가죽을 사용하더라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미처 보지 못한 다양한 무늬와 색깔을 볼 수 있거든요.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패션에서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주목하지 않은 지점이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 걸 아웃도어 의류를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매번 새로운 신소재를 개발하고, 때론 기존의 원단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니까요. 그런데 아웃도어 얘기하면 저희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것 같아요. 어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죠. (웃음)

공간 얘기로 넘어가죠. 어떤 공간을 좋아해요?

(규엽) 생존형 공간이요. 세탁소나 오래된 식당에 가면, 공간 한편에 예상치 못한 물건이나 기물이 놓인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엉뚱함이 좋더라고요. 그건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가 풀어낼 수 있는 방법론이 아니거든요. 삶의 동선이나 방식에 따라서 자연스레 배치되고 만들어진 풍경이죠. 제가 토속 건축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주변이 흙뿐이라 흙으로 지은 집. 돌뿐이라 돌로 지은 집. 특별한 기술을 의도해 만들어낸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집들이 제일 독특하고, 그런 집을 마주할 때 새로운 자극을 받아요.
(정현) 앞서 흰밥 같은 공간을 떠올린다고 했잖아요. 실제로도 벽이 깔끔하게 살아 있는 공간을 좋아해요. 규엽 실장이 말한 것처럼, 깨끗한 벽에 누군가의 삶이 보인다면 열광하는 거죠.

사나 건축 사무소의 작업 중에선 어떤 건축물을 좋아하나요? 그곳 또한 누군가의 삶이 보이는 공간일까요?

(정현) 폴크방 예술대학교(Folkwang Universität der Künste)요. 이걸 좋아하는 건 조금 다른 개념인데요. 제가 느끼기에 사나 건축 사무소는 철저하게 스스로의 의도를 공간에 담는 재주가 있거든요. 그들의 건물을 보면 사용자의 삶을 담은 ‘열린 건축’처럼 보이지만, 건물 도면을 보면 이 모든 것이 다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죠. 건축가의 의도가 확실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하는 작업 방식이 저희 작업에도 좋은 자극제가 돼요.
(규엽) 사나 건축 사무소의 작업을 보통 투명한 건축으로 정의해요. 단순히 유리 소재를 많이 쓰고 흰색 마감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민주적 건축이기에 ‘투명하다’는 표현을 쓴다고 생각해요. 모든 세대와 사람, 집단이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을 제안하는 것이죠.

공간을 조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규엽) 실내 공기가 잘 순환되는지를 봐요. 제가 냄새에 민감해서 그런지 집안에 냄새가 잘 빠지지 않거나 하면 저도 모르게 그걸 해결하고자 고심하고 있더라고요. 쿰쿰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쾌적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건축과 연결된 부분이라 쉽진 않지만, 문이나 창을 하나 더 내거나 벽을 세우더라도 벽 뒤로 공기가 정체되지 않도록 벽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식으로 공기가 정체되지 않도록 해요.
(정현) 디자이너의 윤리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플랏엠을 전개한 지 20년째가 되다 보니 플랏엠의 작업을 믿고 의뢰하는 클라이언트가 늘었어요. “플랏엠이 알아서 잘해주겠죠”라고 저희에게 인테리어 콘셉트를 맡기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저희의 선택에 따라 작업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적게 들 수도 있는 거예요. 디자이너가 수익만을 원한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공사를 하겠죠. 저희가 생각하는 윤리의식이란 불필요한 시공을 하거나 과도한 장식을 통해 디자이너의 미의식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목적에 알맞은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에요.

일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나요?

(정현) 윤리의식과 멋. 결국 결과물이 좋아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만 좋은 프로젝트로 끝나면 안 되잖아요.
(규엽) 결과물로 멋있어야 해요. 그것 때문에 저희가 맨날 밤새며 일하는 것이죠. 말은 대단한데, 결과물이 엉망이면 안 되니까. 결국 모두가 공감할 만한 멋진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두 분 모두 잘살고 있나요?

(규엽) 저는 잘 못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늘 이게 최선일까?”라고 되묻거든요. 아마 성격 탓일 수도 있는데요, 항상 불만족스럽고 불편한 것들이 먼저 생각나요.
(정현) 부족한 모습을 스스로가 인식한다면 그때부터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개선만 하면 되니까요. 문제는 그게 안 보일 때인 것 같아요. 분명 안 괜찮은데, 왜 안 괜찮은지 모를 때야말로 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저희 성격 되게 다르네요. (웃음)

에디터 서재우
포토그래퍼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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