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전통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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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양태오

Oct 10, 2024

양태오는 전통이 간직한 관념적인 시간을 동시대의 조형 언어로 선보이는 디자이너이다. 그는 선조들이 증명한 아름다운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에 주목하며, 인문학적 질문을 토대로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한다. 

에센셜 아이템이 검은색 옷이라고요?

일할 때만큼은 다른 요소들을 의식하는 게 싫더라고요. 수도승이나 승려들이 정해진 복장으로 생활하는 것처럼 저도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의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조금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검은색 옷을 입어야 일이 잘 풀린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로 검은색 옷이 제 에센셜 아이템이 됐어요. 제가 검은색 옷을 입는 건 저만의 개성이라기보다 일을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 같은 거예요.

한옥, 한방, 민화 등 한국 전통 요소를 동시대의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대표님에게 전통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전통을 자원으로 바라봅니다. 전통으로부터 디자인의 영감을 얻고, 동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켜켜이 쌓고 있어요.

전통을 자원으로 바라본다는 말은 전통을 지키는 의미와는 다른 개념처럼 들립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정신이 동시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예요. 아무리 전통이 아름답고 좋아도 현재의 삶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걸 발굴하고 전시한다고 해도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겠죠. 그러니까 전통은 유리 장식장에 넣어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만으로는 계승할 수 없어요. 과거의 아름다운 문화나 좋은 철학이 깃든 물건들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금 시대에도 유용한 가치를 낼 수 있도록 동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필요하죠.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에도 이롭게 각색해 미래를 꿈꾸는 원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전통에 현대성을 부여하는 방법입니다.

새롭게 재해석하고 싶은 전통 요소가 있나요?

소재입니다. 한국의 지리적 특성을 오롯이 반영한 소재들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건 과거에 중요하게 쓰였던 소재들이 잊히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시대에 따라 지리적 특성과 문화가 변하듯이 삶의 방식 또한 변하기 때문이죠. 전통의 ‘내러티브’를 해치지 않고 현대의 문법으로 재해석한 예로 저희가 전개하는 가구 브랜드인 이스턴에디션 Eastern Edition의 감나무 컬렉션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감나무, 특히 먹감나무는 예로부터 한국 전통 가구에서 많이 활용하던 고급 소재였지만, 감나무 특유의 대담한 색채와 나뭇결 때문에 오늘날의 주거 트렌드와는 잘 맞지 않아서 점점 잊혀가는 소재가 됐죠. 감나무 컬렉션은 전통 소재인 감나무를 스테인리스와 패브릭 같은 현대적인 소재와 혼합해 모던한 가구로 풀어냈는데요, 과거와 현대를 잇는 서사를 써 내려가는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삶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만큼 위안을 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목적성이 뚜렷한 삶이 목적을 달성하는 삶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거든요.”

이스턴에디션은 현재 파리와 엘에이에 단독 쇼룸을 운영 중입니다. 두바이 쇼룸도 곧 오픈 준비 중이고요. 쇼룸을 전개할 해외 도시를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이 우선입니다. 해외 도시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이스턴에디션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목적으로 도시를 선정하지는 않아요. 이스턴에디션을 통해서 도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도시의 삶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파리처럼 장식성이 강한 도시에서는 장식성이 없는 가구가 줄 수 있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고, 엘에이나 두바이처럼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아트 신 scene이 형성된 도시에서는 한국이 갖는 역사성,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밝히고자 했던 인문학적 질문을 탐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역할 할 수 있다고 봤어요.

태오양스튜디오는 공간 디자인과 컨설팅뿐만 아니라, 삶에 밀접한 분야의 다양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태오양스튜디오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해요. 지역성과 전통을 기반으로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저희가 생각하는 비전이죠. 전통 한의약에 기초한 스킨 헬스케어 브랜드 ‘이스라이브러리 EATH Library’, 미래의 시간이라는 관념적 이야기를 표현한 향수 브랜드 ‘시낭 Sinang, 전통 소재를 활용한 가구 브랜드 ‘이스턴에디션’을 전개하는 이유도 공간 디자인과 컨설팅만으로 저희 비전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태오양스튜디오는 현재 한옥에 터를 잡고 있는데요, 대표님의 삶에서 한옥이 주는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한옥을 대개 풍토건축(Vernacular Architecture)이라고 부르죠. 지형과 기후, 삶과 문화가 응집된 건축물이기 때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지혜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어요. 저에게 한옥은 물리적 생활 공간이기보다,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초석인 양질의 아카이브예요.

한옥이 해외에서 관심받는 이유도 한국인만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 선조들은 건축물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속기(俗忌)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완벽성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그들은 주거 공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합의점을 찾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죠. 장식성을 강조한 중국, 극도의 완벽성을 추구한 일본의 풍토건축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던 건 아마도 아름다움을 대하는 선조들의 태도 때문이겠죠. 한옥을 보면 굉장히 단순한데요, 한옥의 단순함은 나무의 휘어짐을 완벽하게 다듬어 곧게 펴거나, 나뭇결을 일정하게 맞추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잘린 나무의 상태를 그대로 공간에 어우러지도록 활용하는 선조의 기지에서 나와요. 미니멀리즘의 정수인 한옥을 완성한 건 결국 그곳에 들어온 사람들과 자연이죠. 그리고 이는 태오양스튜디오를 통해서 제가 공간을 전개하는 방법이고요.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도 같습니다.

잠시 멈춰서 본질적인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탐구해야만 해요. 특히나 저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작업하는 데 있어 인문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형태를 짓는다는 건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에 필요한 것을 담는다는 의미에 가까우니까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같은 인문학적인 질문이 있잖아요. 저는 디자이너들이 이런 질문의 답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도 결과물의 깊이가 달라질 거라 확신해요. 인문학적인 질문을 던졌던 디자이너를 벽돌로 비유한다면 벽돌이 모여서 지금의 삶을 누리고 영위할 수 있게 된 거거든요. 디자이너가 허황한 것만 신경 쓴다면 결국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공예트렌드페어, 서울뷰티트래블위크, 디파인 서울 등 서울의 굵직한 페어나 이벤트에 총괄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인문학적 질문을 피력하기 위함일까요?

제가 총괄 디렉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주제’예요. 특정한 페어나 이벤트가 열리는 해에 맞는 주제를 선정하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는 셈이죠. 단순히 디자인 트렌드에 발맞춰 주제를 선정하기보다는 서울이란 도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지금 서울에서 공예의 역할과 당위성은 무엇인지, 동시대의 디자인과 파인 아트의 역할처럼 한번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다양한 고민을 주제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미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공간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저희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간에 방문해야 하는데요. 거리상 제약에 의해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고, 제가 항상 공간을 컨트롤할 수는 없으니까, 처음 기획한 의도대로 공간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죠. 그래서 늘 영화를 제작해 보고 싶단 생각을 해요. 온전한 시나리오로 구성한 영화이기보다는, 공간과 공간에 흐르는 음악,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장면으로 남기고 싶어요.

아름다운 형태를 줄곧 만들어내는 사람은 어떤 새로움에 매료되나요?

격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매료돼요. 최근에 빔 벤더스 Wim Wenders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이 화장실 청소부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에 깃든 품격에 매료됐거든요. 영화 관람 내내 감동하고 감탄했어요. 자신의 격을 나타내는 건 직업이나 부가 아니라 삶에 관한 태도란 걸 다시금 일깨운 시간이었죠.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글쎄요. 저는 목적성이 뚜렷한 삶이 가장 이상적이고, 덜 고통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목적이 고통을 이겨낼 힘이 되어주니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붕 떠 있는 존재잖아요. 그런 삶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만큼 위안을 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목적성이 뚜렷한 삶이 목적을 달성하는 삶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거든요.

에디터 서재우
포토그래퍼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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